▲ 은정실 교도·유성교당/(논설위원)
눈을 감아 봅니다. 내가 누구인지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살아왔나 뒤 돌아 봅니다.
정말 잘했다고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가슴 벅찬 일이 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따뜻한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는 부끄러운 일도 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은 빨리 뛰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누구도 모르게 마음 저 깊은 곳에 숨겨둔 나만 알고 있는 일도 있습니다. 정말이지 누가 알까 무서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믿고 싶지만, 하늘은 알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얼굴엔 웃음 대신 그늘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 불편한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잘못을 먼저 깨닫고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잘못을 짓습니다. 알면서 지은 잘못이 있고, 몰라서 지은 잘못도 많이 있습니다. 잘못 중에서도 모르고 짓는 잘못이 더 큽니다. 잘못인 줄을 알면서 지은 죄는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인 줄을 모르고 지은 죄업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망설임 없이 다시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잘못은 알게 된 그 순간 바로,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잘못은 꺼내 놓는 지금 그 때에,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참회의 기도를 올려 죄업을 점점 가볍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참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며, 화는 앞으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께서도 “사람이 일생을 살자면 잘못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고 또 고치고 보면 잘못 없이 살게 되는 것이다”하셨습니다.

누구나 잘못은 합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뉘우치고 또 잘못을 하고 뉘우치기만 하는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탐·진·치를 같이 없애가야 합니다. 모든 죄를 반성하고 선업을 계속 쌓아가는 사참과 내 안의 번뇌망상을 제거해 가는 이참의 방법을 아울러 행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으로는 완전한 참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의 부처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부처가 아직 아닌 것은 마음의 거울에 먼지가 쌓여 부처의 마음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뿌옇게 쌓인 먼지는 내 속에 들어있는 탐·진·치를 제거하여 없앨 수 있습니다. 먼지가 닦인 마음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하는 기도를 하기 이전에 먼저 나의 죄를 씻는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유성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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