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생활 속에서 사무쳐야 한다"

조석심고·1분선·1분기도로 마음 챙겨

상시일기와 계문대조는 신앙의 근간

가족교화 염원 이룬 교당의 '어른'
장성교당 세타원 박정근(85·洗陀圓 朴精勤)교도. 장성 토박이인 그는, 그의 나이 마흔일곱(원기62년)에 입교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원불교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그. 절친한 친구(김일정 교도)의 권유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말대접'으로 교당에 첫발을 디뎠던 그가 어느덧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교법 안에서 보낸 40여 년의 시간은 그에게 더없이 은혜롭고 감사한 신앙 수행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이 그의 단아한 모습 속에 그대로 배어있다.

"남편과 사별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요. 당시 이덕일 교무님이 주선해 원불교 의식으로 장례식을 마쳤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황송스럽게도 좌산상사께서 참석해 주셨어요." 시댁이 대대적인 유교집안이었던 터라, 남편의 원불교 장례의식은 '대결단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남편과의 이별 앞에서 앞이 캄캄했었지요. 그런데 남편의 49재를 지내는 동안 매일 아침 기도와 독경으로 마음의 의지처를 삼고 안정을 찾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교무님이 제게 신앙의 튼튼한 뿌리를 심어준 것 같습니다." 그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교당 교무에 대한 무한 신뢰와 존경의 마음도, 이때 튼튼하게 뿌리내려졌다.

"아침기도는 좌선과 간절한 서원기도를, 저녁심고는 하루의 참회와 반성의 기도를 드리지요. 1분선, 1분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 마음의 방향을 잡고, 내 마음의 고삐를 휘어잡는 시간입니다." 그는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운동을 하면서도 잠깐씩 멈춰 단전에 호흡을 모은다. 특별한 신앙수행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그에게는 그저 일상이 무시선 무처선 자리이다.

"교화에는 부끄럽게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내 생활 속 신앙 실천을 통해 남에게 본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불교 교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를 체 잡는다.
그런 그가 정성을 쏟고 있는 공부가 상시일기 쓰기다. 유무념 사항을 체크하면서 상시일기를 쓰고, 이를 계문에 대조하며 점검 받는 일에 게으름이란 있을 수 없다.

"모처럼 받은 교도훈련으로 그동안 해이해졌던 마음에 법력증진의 기회가 됐다. 꾸준한 지속력으로 중단 없는 마음공부의 나날이 되도록 다시 다짐한다. 끊임없는 지속력, 명심하고 또 명심한다.", "그동안 저녁심고에 소홀했었던 나를 찾아 눈앞에 쪽지를 써 붙이고, 매일 저녁심고 후에 상시일기를 게재한다. 생활 속에서 매사에 기도하는 마음, 놓치 않을 것이다.", "기도는 간절함이 생명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정진 또 정진하는 나날이 되어야겠다. 남은 생을 '생활이 곧 기도가 되고 기도는 생활 속에서 사무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이렇듯 그의 상시일기는 끊임없는 지속력과 정성심이며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을 상시 점검하는 약속이자 다짐의 기도다.

서예에 입문해 장성문화원 부원장과 청목회(장성서예미술협회)회장을 역임하고, 한국미술협회 중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인 펜글씨로 교전도 두번이나 사경했다. 마음 닿을 때마다 반야심경, 일원상서원문, 참회문을 비롯해 불교 경전 또한 사경했다.

이런 그의 성실한 신앙 실천은 교당 후배들에게는 '좋은 어른'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장성교당 김기성 교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매달 단회 때 유무념 공부를 대조하고, 상시일기, 계문대조 등을 통해 마음공부를 일심으로 하고 있다. 교당 일에도 명석하게 사리취사를 해 주고 있어 후배 교도들이 많은 감동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성실함과 단아함을 공부의 표본으로 삼으려는 교도들이 적지않다는 얘기다.

그의 기도 서원 중 하나였던 '가족교화'의 염원도 이루어졌다. 그의 아들 둘이 법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교당 일에 마음과 정성을 보태고 있다. '마음공부'를 입에 달고 사는 자녀들의 모습이 흐뭇하다는 그다.

"나이 들면 누구나 어른이 되지요. 그러나 나이값 하는 어른이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원불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교당의 숙원 과제였던 젊은 층 교화가 살아나 너무나 반갑다는 그. 그가 '내생에도 진실한 원불교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마음을 내보였다. 그의 마음이 큰 울림이 된다. 그 울림 닿은 붉은 배롱나무 꽃, 잔잔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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