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公心)·공심(空心)·공부심(工夫心)으로 살겠습니다"
매일 2시간 기도 통해 감사, 행복, 보람 찾아

여생의 목표를 신바람 나는 교화대불공으로 잡은 경산교당 윤산 임세윤(68·允山 林世潤)교도. 더위를 식혀줄 비가 내리던 날, 그의 집을 찾았다.
"교당에서 운영하던 다도교실을 통해 먼저 입교한 부인 이은수 님의 소개로 교단을 알게 됐습니다. 25년간 근무한 회사를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찾고 고민하던 시기인 원기84년이었지요"

그는 경산교당 교도들의 법정 넘치는 분위기와 당시 김현국 교무의 설교에 반해 입교를 결심했다. 처음 무늬만 교도였던 그는 시간이 흐르자 지인들에게 원불교 교도임을알렸다. 일요일에 있던 사회활동을 평일에 돌리는 등 법회출석에 최선을 다했다. 이후 부임한 최자은 교무와 교도들과 6년 동안 거르지 않고 시행한 100일기도는 그에게 교법에 대한 신앙·수행의 참 재미를 알게 했다.

"이 시절 교당의 차량봉사를 맡아 최 교무님과 교도님들을 모시고 다니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매년 종법사 신년하례 참석과 성주성지, 만덕산훈련원 등에 참가했습니다. 좌산상사님와 경산종법사님을 포함한 많은 스승님으로부터 훈증도 받았습니다. 법 공부는 나 자신을 일깨우는 기회가 됐지요"

젊은 시절 그는 옆을 돌아볼 여유 없이 일만 하고 살았다. 늘 출세 지향의 생각과 아이들에게도 채찍질만 하는 욕심 많았던 아버지였다. 그 자신의 인생도 주체하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바꾸려고 시도했던 자행자지의 삶이었다. 더 일찍 교단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그는 신앙생활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교법을 만났기에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라 여긴다. 항상 즐겁게 생각하고 생활하니 걱정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퇴직한 전 회사로부터 권유받아 협력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을 배웠기에 그는 회사에서 나오는 이익을 직원과 나누고 회사를 맡은 책임자에게 권한을 최대한 이양했다. 대표인 그는 큰 일만 주로 챙기고 관리하니 성과도 좋고, 개인적인 신앙·수행의 시간도 많아졌다. 옛날의 그였다면 회사경영자로서 골똘히 생각하고 돈에 대한 욕심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생활에 감사하고 만족한다.

그는 매일 새벽 4시45분에 일어나 5시~7시까지 기도를 한다. 자신의 법당인 2층 기도방에서 좌선을 비롯해 원불교100년성업대정진기도, 일원상서원문 3독, 반야심경, 휴휴암좌선문, 청정주 등의 독경과 원음방송을 통한 경전공부, 대산종사 대적공실 법문을 의두로 연마하는 등 10년간 기도를 시행해왔다. 이 시간을 통해 그는 하루를 행복과 감사, 보람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는다.

"매일 해 뜨는 것, 아침에 눈 뜨는 것 등 천지은에 감사와 기쁨을 말할 수 없이 느낍니다. 기도생활도 습관이 됐기에 이제는 그냥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루 리듬이 깨지는 것 같습니다"

〈대종경〉 신성품 11장 '봄 바람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이란 법문을 좋아한다는 그는 늘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대구 동명마음공부대학 1기생을 수료한 그는 마음공부는 물론 지난해 9월에는 영남사이버대학으로부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는 삶을 살고 있다. 교도회장인 그가 교당의자랑거리를 소개했다.

"교도들의 연고 있음을 무조건 받아주시는 서기태 교무님을 비롯해 신심·공부심으로 뭉친 선후배 교도들, 부부가 함께 공부하는 일원가족 10가족 이상이 있습니다. 항상 나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교도들의 주무 역을 자처하는 이은수 님이 있습니다"

신입교도들이 교당을 찾았을 때 그는 기존교도들과 멘토를 맺게 해 그들이 교당과 인연을 놓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연화단 단장인 이 교도는 젊은 교도들을 자주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그들 삶의 애로사항을 청취한다. 교도들의 애경사를 챙기는 등 법 동지와 지원군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는 이 교도에게도 늘 감사하고 있는 그다.

"이 회상을 만나서 몸과 마음을 오롯이 바칠 스승님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 동지를 만났습니다. 도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요. 이제 교화대불공의 과제가 남았습니다"

원불교 100년에 100명이 출석하는 교당을 만들겠다고 스승님과 약속했다는 그. 그도 교화가 어렵다. 하지만 꾸준히 교화대불공을 실천하고 있다. 자녀는 물론 처가와 친가 가족까지 정성을 쏟았고, 지인과 친구, 지역사회에 대한 교화까지 시행한다.

올해 법호를 받은 그는 "입교한 지 20년도 안 됐는데 나이 많다고 주신 것 같습니다. 맏이로서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질문에 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교도들 퇴굴심 나지 않도록 하고, 나를 잊은 자리에서 공심(公心), 공심(空心), 공부심(工夫心)으로 살겠습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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