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수행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개인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 출가를 하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자유입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가정사에 얽매이지 말고, 창공을 나는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살라'던 어머니의 출가 권유 영향인지는 몰라도 늘 자유를 꿈꾸죠.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욕심이나 어리석음, 업장과 악습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요?

철이 없던 출가 초기에는 늘 마음이 급했습니다. 어서 빨리 깨달음을 얻어서 괴로움은 없고 행복만 있는 상태를 애타게 구했죠. 하지만 현실은 늘 도전해야 할 과제와 해결해야 할 숙제로 가득했고 행복하기는커녕 괴로움이 더 컸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행복은 언제 오는 거야?"
"무엇이 문제지?"
"어떻게 하지?"

이 집요한 의문들과 씨름하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삶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벗어나야 할 것은 뭔가 잘못 되어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고통'이지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수고로움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그때부터 분명해졌습니다.

마땅히 힘써 행해야 할 영역에서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억지로 하려 하거나 욕심이나 집착으로 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고통은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겠다는 거죠.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사소하게 어떤 밥을 먹고 옷을 고르는 등 기호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이 선악으로 갈릴 때에는 극히 주의를 해야 하죠.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수행자의 진정한 힘도 바로 이 올바른 취사에서 나오죠.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해서 나와 세상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전체와 부분, 지금과 나중에 변화될 상황까지 짐작할 수 있어서 내 중심의 어리석음에 가리거나 나만을 위하려는 욕심에 흔들리거나 집착이 줄어들어서 무엇이 옳고 그르며, 어떤 게 욕심이고 어떤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판단 기준을 갖게 되면 이제 실행이라는 수행의 양 날개를 사용해서 취할 일은 취하고 버릴 일은 버리는 힘으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겁니다.

몽골 제국 건설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전략가 야율 초재의 명언은 우리가 취할 건 취하고버릴 건 버리는데 대한 시사점을 주죠. "하나의 이익을 주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與一利不若除一害),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를 없애는 것만 못하다(生一事不若滅一事)".

밖으로 선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으로 스스로의 허물을 고치는 것은 더 소중하고, 해야 할 것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수행이 어렵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면 스스로의 허물을 찾아 고치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밖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안으로 내 자신의 허물을 찾아서 진지하게 고쳐나가는 거죠.

수고로움 없이 자유는 없습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죠.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밴쿠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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