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건축가 김중업의 대표작인 주한 프랑스대사관.
최근에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재건축한다는 기사가 떴다. 삼성동, 남대문, 서소문동 등에 나눠져 있는 상무관, 문화원, 관광청 등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한 현상설계 공모가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건축계에는 대사관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사관의 시작도 현상설계 공모였다. 1959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과 문화부장관 그리고 프랑스 대사에 의해 추진되었던 설계 공모에는 프랑스 건축가와 함께 김중업도 초청되었다.

대사관 설계는 자국 건축가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사관 공모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건축가가 참여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프랑스 건축가 르꼬르뷔제의 추천 덕분이었다.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꼬르뷔제(1887~1965)는 건축에서 도시까지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이 없다. 일층을 들어 올린 필로티 공간이나, 최근에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옥상정원은 이미 1920년대에 르꼬르뷔제가 제안한 근대건축의 5원칙 중 하나였다.

1950년대는 일본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의 유산을 청산하고, 직접 서구 근대문화를 수용하려는 욕구가 컸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1941년 일본 요코하마 고공(橫潰高工) 건축과를 졸업한 김중업 역시 그런 일본식 근대 건축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김중업은 당시 르꼬르뷔제의 건축을 알게 되면서 롤모델로 삼는다. 그러던 차에 195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르꼬르뷔제를 직접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같이 일하게 된다.

당시 르꼬르뷔제의 주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인도 펀잡주의 수도 샹디갈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건축가 김중업은 주로 실시 도면을 그리는 작업에 주로 참여했다고 한다. 르꼬르뷔제의 샹디갈 건물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인도의 토착 건축 형태를 차용한 지붕과 캐노피의 조형적인 형태인데, 오목한 형태의 지붕이 공중에 떠있는 주지사 관저를 보면 프랑스 대사관의 지붕이 연상되기도 한다.

1955년 한국으로 온 그의 초기 작업을 보면 르꼬르뷔제 건축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1956년에 지은 부산대학교 본관(현 인문관)에는 르꼬르뷔제의 롱샹교회 개구부를 연상시키는 창이 보이는가하면, 1958년에 지은 서강대학교 본관 건물 앞에는 르꼬르뷔제의 빛을 차단하는 차양벽 브리즈-솔레이유(brise soleil)를 그대로 가져놓은 것 같다.

실제로 당시 김중업은 아직 자신만의 건축을 찾지 못했다고 스스로 비평하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1961년 완공된 프랑스 대사관은 진정한 의미의 김중업 건축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르꼬르뷔제의 필로티가 건물 전체를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면, 김중업의 필로티는 우리 전통 건축처럼 지붕을 띄우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김중업이 프랑스 대사관에서 제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한국의 산과 처마에서 느껴지는 '살아있는 선'이었다. 그리고 그 '선'을 통해 우리의 풍광을 담아내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집무실의 지붕은 증축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대사관저의 지붕에서는 그 '살아있는 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당시 당선 평에 의하면, 김중업의 안은 "건물의 조형과 배치에서 한국의 정서와 프랑스의 우아한 품위를 잘 접목했다"고 한다.

이번 공모를 통해 한국과 프랑스가 다시금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과 프랑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기대해 본다.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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