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삶

▲ 이태은 교도

후쿠시마에 서다
"일본은 전력예비율이 3%입니다. 태양,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가 전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핵발전이나 석탄화력발전을 기저부하(밤낮을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일정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전원)로 사용하면 껏다 켰다 하는 시간이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전력예비율이 10%이상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지난 8월초 일본에서 열린 '원폭70주년,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제2분과 토론 '재가동문제와 일본에너지정책' 토론자로 나온 '일본원자력정보연구실' 대표 니시오 바쿠씨의 발표를 듣다가 '헉'소리를 내지를 뻔 했다.

조금 전 내가 발표한 한국사례에서는 전력예비율이 22%나 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핵발전소를 13기나 더 짓겠다는 강력한 근거가 바로 전력 피크시기를 고려한 전력예비율이었다.
니시오 바쿠씨는 일본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에는 전력예비율이 8~10%를 차지했는데 54기의 핵발전소가 모두 가동을 멈춘 제로가 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가스· 태양광·풍력발전소들이 늘어나면서 예비율 3%만으로도 피크가 조절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핵발전, 석탄화력발전과는 다르게 가스와 재생가능에너지 등은 피크시기에만 껐다 켰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일본 날씨는 39도 이상의 폭염인데 회의장은 에어컨 바람으로 겉옷을 걸쳐야 할 정도의 냉기가 흘렀다. 7일간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지하철, 호텔과 행사장 등에는 과도할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았고 열어놓은 상가들에서는 에어컨바람이 훅 밀려나왔다.

54기 핵발전소를 운행했던 2011년 3월11일 이전이나 핵발전소를 모두 멈춘 2015년 8월10일이나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일본에서의 일주일은 핵발전없이 살아가고 있는 선진사회의 체험이었다.
에너지절약으로 핵발전소 10기 분량의 에너지를 절감했고, 28기 분량을 재생가능에너지로 만들어낸 일본사회는 핵발전소 없이도 인류사회가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만, 아베정부와 도쿄전력만이 남아도는 전기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기를 쓰고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지난 8월11일 센가이핵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을 허가하면서 핵발전소 재가동시대를 열고 말았다.

지난 8월 초 방문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주변지역에 쌓아올린 까만비닐부대 더미를 잊을 수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30킬로미터 마을을 지나자 까만비닐부대 더미가 논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그 주변은 밝은 황토가 새로 깔려있었다. 방사능물질로 오염된 흙을 5cm 긁어내고 새로운 흙으로 덮는 작업, 말로만 듣던 '제염'이었다. 그 옆에는 포크레인이 무심히 서있을 뿐 작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제염작업 노동자가 당해야 하는 피폭은 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버스가 사고지역에서 10km 가까워지면서 제염작업마저도 못한 논에는 풀이 무성하다. 특수제작했다는 4~5년의 수명을 가진 까만비닐부대는 낡고, 삵아 듬성듬성 찢어져 있었다.
땅은 그렇다 치고 방사능물질을 잔뜩 머금은 숲과 마을 앞의 웅덩이, 그리고 처마밑에 대한 대책은 없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지점에서 반경 20km 근처의 마을 이재민들은 내년부터 귀향시킨다는 정책이 발표됐다. 가난한 이재민들이 다시 돌아가 살 수밖에 없는 땅 후쿠시마에서 왜 굳이 홍농 한빛핵발전소에서 7km 남짓에 위치한 영산성지가 떠올랐을까?

가라앉는 키리바시공화국
에스키모로 잘 알려진 이누이트족의 활동가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북극곰과 남극펭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인간의 얼굴을'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경제적 기반을 잃고 고향과 고국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저 멀리 섬나라 그리고 못 사는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뚜렷했던 4계절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폭염과 강추위 등 심상치 않은 기후변화의 조짐들이 닥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일회용 투성이이고, 걸음걸음 탄소발자국을 내딛는다.

태평양 중부 광대한 해역에 걸쳐 있는 30여 개의 산호초 섬들로 이뤄진 키리바시는 811㎢ 국토면적에 인구 10만의 작은 나라이다. 지구 기후환경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주는 선학평화상 수상자로 한국에 온 키리바시공화국 아노테 통 대통령은 지난 8월27일 서울 시민청 다목적홀 연단에 섰다.
박원순 시장과 김제남·장하나 국회의원 그리고, 전국의 기후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노테 통 대통령은 우리의 자녀를 위해 안전한 미래를 확보해야 하며, 그것은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계 도시의 75%가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의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그 어떤 나라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21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는 '지구를 살릴 마지막 기회'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다섯 번째 보고서에 따르면, 금세기에 발생하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섬나라나 저지대 국가에 심각한 홍수와 침식 피해를 초래할 것이며, 청정 수자원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키리바시와 같은 섬 나라는 매년 1.2cm의 해수면 상승이 관측되며, 이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이미 받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 세계는 2050년까지 지구 기온이 2도씨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매장되어 있는 80%의 석탄이 채굴되지 않고 땅 속에 묻혀 있어야 한다. 12월 파리총회는 석탄광산개발 중단에 대한 세계적인 합의안을 도출해야만 한다.

키리바시는 국민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0.8톤이고, 한국은 12톤이다. 15배의 차이다. 한국은 지구온도 상승치를 2도씨 이하로 줄이기 위해서는 12톤 배출량을 2~3톤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오늘도 키리바시 국민들은 범람하는 바닷물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선진국의 코끼리 똥을 개발도상국인 참새가 치우고 있는 격이다. 부정의와 비도덕이 '기후변화'이면의 모습이다.
후쿠시마와 키리바시공화국이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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