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대불공 32

▲ 김보신 원로교무
김춘화옥, "180㎡ 드릴테니 북광주교당 지을라오"
이후 간절한 기도정성으로 교당설립 인연까지 찾아

광주교당 부교무를 한 후 승부교당으로 교무 발령을 받았다. 이때가 25세였다.

승부교당에는 논이 있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농사를 짓나'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교도들이 이야기하기를, "여자 교무가 자그마하니 다른 논은 물을 대는데 교당 논에는 물을 못 대서 논두렁에 앉아 울더라"고 했다.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운봉교당을 거쳐 여수교당, 서광주교당에서 근무했다. 당시 서광주교당 김춘화옥 주무가 북광주교당을 짓기를 원했다.

김춘화옥 주무가 "서광주교당 부지가 몇 평이오?" 하고 묻기에 "180㎡입니다"하니 그 분이 "180㎡ 드릴 테니 북광주교당 지을라오?"하고 물어왔다. "그렇게 해 봅시다"하고 설계를 내고 보니 180㎡로는 나오지 않아 나중에 231㎡로 해서 북광주교당을 지었다.

당시 김춘화옥 주무는 '내가 땅을 내놓으니 집 지어줄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사'하고 기도했다. 주무님은 교당에 나오는 교도 중 경제력 있는 사람을 지정하고는 그가 마음으로 응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정해놓고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 집 지어줄 인연을 만나게 해주십사 기도하세요"라고 했다. 이 분이 기도 방법을 바꾸어 진행하니 500만원을 희사할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큰 돈이었다. 그렇게 231㎡ 부지에 북광주교당을 짓는데, 당시 돈 1200만원으로 지었다. 그 때 서광주 윤광일 교도가 "북광주교당 지을 땅을 내가 180㎡ 드리리다"라고 또 말하는 것이었다.

김춘화옥 교도는 당신의 부지 내놓는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3년간 기도한 사람이었다. 윤광일 교도 생각에는 농성동이 좋은 부지였고, 북광주교당 부지는 공장 지대여서 교당 터로는 부적합하다 했다.

나는 북광주교당 짓는 것보다 농성동 부지의 활용에 마음이 기울어, 당시 대산종법사께 전화를 했다.
"농성교당 기초로 부지를 합하여 활용하면 좋겠습니다"라고 하고 신도안으로 교도들과 함께 찾아뵈었다.

경과를 들은 대산종법사는 "북광주교당을 어떻게든 지어드리고, 농성동의 180㎡는 농성교당 기초로 삼으라"고 결정을 내려주셨다. 이에 김춘화옥 교도가 매우 놀랐다. 당신의 부지를 팔아서 집 지으려 했는데 그렇게 해주셔서였다.

윤광일 교도는 농성교당 창립주, 김춘화옥 교도는 북광주교당 창립주가 되었다.
그 때 발타원 정진숙 교구장님이 "자네 복이 어디에 다 붙었는가! 어찌 땅을 231㎡, 180㎡ 씩 주는 사람이 생기는가"하며 놀라셨다.

김춘화옥 교도의 기도가 매우 간절한데 기도의 국(局)을 틈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온 것으로 보였다.
훗날 김 교도는 김홍선 교무가 북광주교당 근무 당시 유치원을 설립할 땅을 희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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