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용 의료기구 공장·기술학원 운영
'원광한국어학원'으로 이슬람 교화 토대 마련

한국보다 파키스탄에 더 오래 머무르는 남편, 두 번의 좌절 후 파키스탄 대통령의 초청으로 다시 간 사업가, 결혼전 했던 '교당 짓기' 약속을 위해 집까지 판 가장, 이슬람 국가에 점 하나라도 찍기 위해 한국어학당 문을 연 신앙인. 이 영화같은 사연의 주인공 이진선(호적명 강재·비아교당) 주)나노메디텍 대표를 바쁜 귀국 일정 중에 만났다.

그가 외과용 수술기구 회사를 설립한 후 파키스탄을 찾았던 것은 원기86년이었다. 수술기구의 원료인 철 주산지이자 영국식민지 역사 속에 인프라가 잘 구비됐다는 파키스탄, 그러나 그가 본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기술이 너무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르쳐 고용하자 싶어 컴퓨터설계학원을 열었는데, 3년 하고나서 손을 뗐어요. 현지 사장들이 직원을 보내는 게 아니라 자꾸 아들을 보내 기술을 가져가려고만 했거든요."

그러나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그에게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이 연락해 현지로 초청한 것. 그것도 당시 파르베즈 무사라프 대통령이 직접 초대해 만나는 자리였다. "코트라(KOTRA) 본부장과 함께 대통령을 만났는데, 극진한 대접과 함께 직업훈련소 운영을 요청하더군요. 잘 됐다 싶으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은 '내 사업 잘되기'가 아닌, '한국에 어떻게 기여할까'였다. 당시 수술기구를 만드는 기계 수준은 독일과 일본, 한국 순으로 높았는데, 현지에는 태국산이 많았다. 가격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한국에서 장비 들여올 때 무관세로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제 회사만 이득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제품이 잘 팔려 우리 기업들도 잘 돼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내 정권이 바뀌며 두 번째 좌절을 맞은 이 대표. 그는 국내에 집중해 주)나노메디텍을 우뚝 세우기에 매진했다. 현재 우리 수준은 일본을 앞지르고 독일 턱 밑까지 따라간 상태로, 이미 탑클래스인 의학과 함께 꾸준히 성장해왔다. 총 3천 종류 정도인 국내 기구 중 그의 회사는 1558 종류를 생산, 이런 종합적인 규모를 갖춘 것은 국내 단 두 군데다.

"수술 자체는 점차 피하는 추세지만, 사고에 따른 수술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개인별 맞춤 수술기구나 의료기의 수요가 커요. 제가 만드는 기구로 사람들이 삶을 찾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보람으로 살고 있지요."

그러나 파키스탄과의 인연은 끝이 아니었다. 원기94년 대사관에 있던 아습꺼르푸어 씨가 현지의 차관이 돼서 그를 찾아 교육과 기술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의 길, 그는 점차 안정된 현지 상황 속에 공장과 기술학원을 운영하며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점차 파키스탄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앙에 대한 갈증과 오래 전 스승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원기73년 결혼하기 전 이양신 교무님이 대산종사님 앞에서 그러셨어요. '이명신 교무 동생 선숙이(이정신 교도)와 결혼하려면 교당 10개는 지어야 된다'고요. 이후에도 늘 마음에 있었던 약속이었죠. 그러다 재작년 좌산상사님을 뵌 자리에서 '이제 이슬람권에 점 하나라도 찍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싶었지요."

98%가 무슬림인 이슬람국가 파키스탄에 '점 하나'를 찍기 위해 그가 생각해낸 것은 한국어학원이었다. '원광코리안랭귀지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작년 5월부터 허가를 위해 쌓아온 모든 인연들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드디어 허가가 난 11월, 그는 한 걸음에 상사원을 찾았다.

"상사님, 10개 중 하나 될까요?" "그것보다 크지. 잘 했다."
그 말씀 하나에 본업보다도 한국어학원에 더 큰 힘을 쏟고 있는 이 대표. 시설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릴 때도 아내 이 교도와 한 마음으로 집까지 팔아 1억4천만원을 들였다.

"이번 한국행으로 관련 서류가 마무리됐어요. 시알코트의 90평 2층짜리 학원이 마련된거죠. 이미 2월에 가오픈으로 한글반 1기생을 배출했고, 9월부터 1년과정의 2기를 지도합니다."

그는 이제까지 현지 기술 교육과는 달리 학원을 유료로 고집하고 있다. 언젠가 교무가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무료로 운영하면 여러 지원금을 받을 수야 있지만 그건 단기 해결이니까요. 최소한의 생활을 해결해드려야 교화하실 수 있잖아요. 학원 말고도 한국 기업들과 파키스탄 젊은 인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 등으로도 경제적 토대를 다지고 있고요." 다만 이를 위해 한국대학생 교사를 찾고 있다. 하루 4시간 한국어수업을 해주는 조건으로 숙식제공은 물론, 영국 캠브리지대학이 직영하는 영어연수원 학비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영어연수 하고 싶은 남학생 교도가 와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파키스탄인 교무도 나오고, 이슬람권에 원불교가 퍼져나갈 시작점을 함께 만들어가는 거죠." 중학생이던 원기60년 남원교당을 찾아 이후 원주교당, 신림교당을 거친 이진선 대표. 첫 법회 후 그 어린 마음에도 "이게 진짜 종교구나" 했던 소년의 감동과 청년의 약속이 이제는 지긋한 중년의 정성과 노력이 됐다. 올 가을 '원광한국어학원' 봉불에서 또 하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를, 낯선 땅에서 그는 매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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