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 교도 / 분당교당
높아진 하늘을 무심코 올려다보다가 언뜻 '가을이 좋다'던 한 귀농 젊은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거칠게 그을린 얼굴이었지만 농사를 짓는 게 참 좋다며 웃던 그였다. 그는 이제 큰 욕심 없이 하늘과 땅과 경쟁을 하며 하루하루의 농사일에 전념하는 게 더없이 행복하다고도 했다. 때론 예기치 않은 시련도 없지 않지만, 그럴수록 인내와 타협으로 스스로를 일깨우며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언제나 들인 정성만큼 정직한 수확으로 보답해 주는 작물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좀 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서 귀농을 택했다고 한다. 한 때는 가끔 도심 속 반듯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좋은 씨앗을 골라 심고 열심히 가꾸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응답을 해주는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며, 감자랑 옥수수가 익어가는 밭이랑에서 흘린 땀 냄새가 더없이 향긋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귀농 젊은이를 생각하다가 떠올린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세계로봇경진대회에서 세계유수의 팀들을 제치고 우승한 순 한국형 로봇'휴보(Hubo)팀을 이끈 KAIST 오준호 교수(기계공학과. 로봇연구센터소장)의 이야기다. 나는 최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교단의 '교헌개정논의'를 생각할 때마다 이 시대의 바람직한 리더십의 한 핵심명제를 깨닫게 해 준 오교수를 떠올리곤 한다.

오 교수는, 지난 6월, 세계재난구조로봇경진대회(DARPA. 로보틱스 첼런지)에서 함께 출전한 미국의 NASA와 MIT공대, 일본의 도쿄대 등 세계 유수의 대학과 로봇제조회사 팀들을 물리치고 우승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40여년이나 뒤진 변방의 후발 한국의 로봇연구팀을 이끌어 불과 10년여 만에 세계최고의 로봇 '휴보'를 탄생시킴으로써 새로운 로봇개발역사를 창조해 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전체 팀원들의 우수한 지성과 역량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결집, 합력케 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는 먼저 서로 다른 전문기술 분야의 팀원들을 자발적으로 소통, 협력케 함으로서 전체 팀원들의 지식과 능력을 함께 공유케 하고, 또 각자가 자신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전체 조직은 물론, 팀원 각자의 발전을 위해 그때그때 조절하고 개선해야 할 점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독려하면서, 과감한 투자와 인프라를 확충, 동원함으로써 마침내 세계최고의 '휴보'팀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히, 진정한 이 시대의 '소통과 조정, 통합', 그리고 성공의 요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9월이다. 풍요를 상징하는 결실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 좋은 계절을 맞으면서도 왠지 마음 한쪽이 따로 조급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앞의 두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왜 자꾸만 저간의 '교단교헌개정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자꾸만 저 귀농젊은이와 같은 겸허한 자기통찰력과 결단력, 그리고 전체구성원의 지성과 역량을 하나로 융합, 전체조직은 물론 구성원 각자의 꿈을 이루게 한 오교수와 같은 폭넓은 운심처사(運心處事)의 지혜와 기개(氣槪)가 부러워지는 것일까?

우리의 '교헌개정'문제는 교단의 최고과제였다. 그리고 일거에 완벽을 기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은 최상이 아니더라도 단계적으로 그 목표에 다가가는 바람직한 차선의 길도 얼마든지 '논의'했어야 했다. 보다 멀리 내다보고,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바람직한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진정한 교헌개정 논의의 근본목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궁리와 더 깊은 논의를 해보자. 당장은 최상의 길이 아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목표에 다가가는 절차적 차선책도 하나의 길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래서 이번의 교헌개정 논의도 새로운 100년의 도약을 위해 착수했던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이번 교헌개정은 미래의 정신문명을 주도해 나갈 주세교단으로서의 최상의 교정체제와 교화역량을 갖추기 위한 우리 모두의 최고의 서원이 아니었던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다. 다시 한 번 더 큰 '소통과 논의, 그리고 더 넓은 합력과 화합'의 문화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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