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의 좌우보처는 문수(文殊)보살과 보현(普賢) 보살이다. 문수보살은 대승(大乘)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요, 보현보살은 최상의 실행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문수, 보현 보살은 석가여래불의 협시(脇侍, 좌우에서 가까이 모심) 보살로 유명하다. 좌문수(左文殊), 우보현(右普賢)이다.
문수보살은 석가불이 열반한 후 인도에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하였다고 하며, 반야 지혜의 권화(權化)처럼 표현되어 왔다.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다.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된다. 보현보살은 세상 속에 뛰어들어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활동을 한다.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로 보현의 10대행원은 유명하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새 회상 원불교의 창시자인 원각성존 소태산 여래의 좌우보처불은 정산 송규 종사와 주산 송도성 종사 형제이다.
정산종사의 종통을 이어받은 대산 김대거 종사가 이런 법문을 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보처불은 문수, 보현 보살이시다. 우리 소태산 대종사 부처님의 좌우보처불은 정산종사와 주산종사이시다."
필자가 대학 재학 시절, 방학이면 대산종법사가 주재하는 계룡산 신도안에 자리한 삼동원을 찾아 법문 정리를 도왔는데, 그 당시 이 법문을 접했다. 대산종법사는 평상시 법문을 할 때마다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앞장 세웠고, 주산 종사도 높이 받들었다. 주산종사가 40세에 열반에 들었을 당시, 정산종사가 아우인 주산의 법위를 정식 출가위로 사정해 교단 최초의 종사위로 영모전 법보에 올렸는데, 후일 소태산 대종사 탄생 백주년을 기념할 때 대산종사가 주산종사의 법위를 정식 대각여래위로 추존한 것을 보면 그 면모를 알 수 있다.
정산종사는 불교의 문수보살에 해당되고, 주산종사는 보현보살의 역할을 담당한다. 정산종사는 스승인 소태산 대종사의 법통과 종통을 이어 후계 종법사가 되어 19년간 교단을 이끈다. 일제 말기와 해방후 한국전쟁 등의 위기에 뛰어난 지혜로 교단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아우인 주산종사는 대종사의 사위가 되었고, 대종사 측근에서 주옥같은 법문을 수필해 〈대종경〉 편수에 큰 역할을 한다. 특히 8.15해방 후 전재동포구호사업을 발의하여 서울 등지에서 진두지휘를 하다가 전염병으로 인해 순직했다.
정산종사와 주산종사 형제는 함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처음 출가하여 부안 변산에서 대종사를 측근에서 같이 모신 시절을 제외하곤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특히 영산성지가 교단의 발상지요, 정관평이 있고 교역자 양성을 하는 영산학원이 있는 만큼, 대종사는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은 영산을 지키도록 했다. 정산이 총부에 있으면 주산은 영산에 있고, 주산이 총부에 있으면 정산은 영산에 있었던 것이다.
형제가 대각여래위, 즉 대원정사의 법력을 가졌으며, 한 부모를 인연으로 이 세상에 와서 전무출신을 하여 새 주세불 소태산 대종사의 좌우보처불이 되었다. 그 인연이 참으로 신묘하고 경이롭다.
<원불교신문사 사장>
- 기자명 송인걸 교무
- 입력 2015.09.18
- 수정 2018.01.12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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