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종, 교단의 역사와 함께해
시대 변화로 울림없이 보관
종 박물관 건립 반드시 필요

▲ 이형권 교도 / 기린교당
원불교에 입교하고 3년 후인 원기81년, 장모로부터 종(鍾)을 선물 받았다. 마음을 맑게 해주고 세상을 밝히는 종의 울림에 매료되어 국내외 여행을 할 때면 종을 수집해 오곤 했다.

그러다 만덕산성지의 인연으로 8월2일∼8일 아내와 함께 하선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됐다. 대종사, 정산종사, 대산종사 세 분의 성자가 머물었던 곳, 12제자와 더불어 대종사가 원기9년 처음으로 선을 났던 초선성지, 총부건설을 준비했던 주비지(籌備地)로서의 역할을 해온 거룩한 만덕산성지에서의 6박7일은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일하자'는 영육쌍전에 바탕한 산업훈련의 도량, 푸른생명농원과 훈련원을 일군 승산 양제승 종사를 비롯한 3분 교무의 지도 아래 훈련과 봉사활동을 원만히 마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숙제를 안고 왔다. 만덕산성지는 현재 초선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종 박물관 건립을 목적으로 범종을 수집하고 있다. 교단 초창기 각 교당과 기관이 세워질 때마다 그 역사를 함께해온 좌종은 시대와 민심의 변화로 인해 많은 곳에서 울림 없는 범종이 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만덕산성지에서는 교당 창고에 보관 중이거나 사용하지 않는 종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을 수집 중이다. 현재 진안·약대·오수·옥과·주천·아영교당에서 범종을 보내줬고, 좌포·기린·중길리교당에서 좌종을 기증해 이에 동참하고 있다.

원불교의 의례 중 범종과 좌종 10타를 울리는 뜻은 종소리가 시방세계에 울려 퍼져, 그 소리를 듣는 모든 중생이 다 제도 받기를 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매일 새벽 5시에 33타, 저녁 10시에 28타의 종이 울리는 뜻은 불교적 관점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원불교 좌종의 역사와 도입 배경은 월간 〈원광〉 2003년 3월호(통권 343호)에 "보통은 경종이라 부르나 원불교 예전에 좌종이라 명시되어 있으므로 정식 이름이 좌종이다. 교당에 있는 좌종은 초기에 일본에서 들여와 대종사 당대부터 사용하였고, 숭산 박길진 종사가 처음으로 들여와서 종을 치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 주었다"고 밝혀져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종사가 1916년에 원불교를 개교했고, 53세(1943)에 열반에 들었으며, 해방(원기30년) 당시 25개 교당에 8천여 명의 교도가 있었다고 하니, 일제강점기 하에서 좌종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싶다.

팔월의 끝자락에 종과 종소리와 박물관 운영에 대해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만덕산성지에 가족들과 진천 종 박물관을 방문했다. 종 박물관은 50여 년간 범종 외길 인생을 걸어온 한국 범종의 산증인 원광식 선생(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에 의해 시작됐다. 1999년 충북 천년대종을 제작하면서 진천과 인연을 맺은 그는 범종 150여점을 진천 종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한국 종을 연구, 수집, 전시하고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2005년 9월에 이곳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안내로 전통 주철기술과 세계적 수준의 종 제작기술에 대한 것을 제작 현장인 공장(성종사)에서 설명을 들으며 장인의 숭고한 뜻을 엿볼 수 있었다.

그곳을 다녀온 후 나는 만덕산성지가 계획하고 있는 종 박물관 건립(원기110년)은 필연적이라 믿고 있다. 원불교 역사유물 중 하나인 종의 보존과 전시를 통해 교단 만대에 길이 보전할 거룩한 성지로 거듭나기 위한 작업이다. 아울러 훈련원이 기도적공의 도량, 11과목의 교리훈련도량으로 천불만성이 발아하고 억조창생의 복문이 여는 성지가 되어, 중생의 마음을 맑히고 어둔 세상을 밝히는 범종 소리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전달될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 〈원불교성가〉 91장 법종송(法鍾頌)을 불러본다.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울려, 원음 시방을 고루 맑히고, 삼계 육도의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대원각을 이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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