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징했던 옛 서울시청.
서울도서관은 옛 서울시청 본관으로, 1926년 일제가 경성부 청사로 지은 건물이다.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옛 서울시청 건물이 시민들을 위한 밝은 도서관으로 바뀐 것이다. 각층마다 다양한 테마의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다. 3층에는 옛 시장실, 접견실, 회의실이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옛 회의실에는 역대 서울시장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고, 세운상가와 한강개발사업 등 서울시의 중요 사업 문건들이 회의 책상 위에 전시되어 있다. 회의실을 한 바퀴 돌면 서울시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어진 지 90년 가까이 되었지만, 경성부 청사였을 때나 서울시 청사였을 때나 공간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옛 접견실 카페트 밑에서 1926년 6월 6일자 '아사히신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원래 경성부 청사는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덕수궁 바로 앞에 거대한 청사를 지어 옮겨온 것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3.1운동이 제일 거셌던 덕수궁 앞에 청사를 지음으로써, 조선의 독립의식을 꺾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건물을 우리는 광복 후에도 서울시 청사로 계속 사용해왔다. 좋든 싫든 옛 시청 건물은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제 우리 일상 속에도 깊게 자리를 잡았다.

건물의 중앙홀에 들어서면 위에서 빛이 쏟아진다. 위를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이 보인다. 옛 구리 돔을 유리 돔으로 교체한 것이다. 서울광장 쪽에서 보면 옛 청사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만, 사실 옛 건물에서 보존된 것은 중앙홀 부분과 서울광장 쪽 전면 벽체뿐이다. 중앙홀 아래 땅 속에 깊은 파일을 박아서 기존 구조를 띄우고, 그 아래로 파 들어가 지하 시민청 공간을 만들어 넣었다. 도서관 열람실 공간 역시 새로 지어졌다. 옛 시청의 전면 벽체 뒤에 철골 구조를 삽입하여 기존 벽체를 세우고, 나머지 내부 슬래브를 모두 잘라낸 후에, 지하 시민청 위로 열람실을 지어올렸다. 이런 방식의 리모델링에 대해, 역사적인 건물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기를 훼손하기 위해 일본이 의도적으로 지어놓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역사적인 맥락에서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보존된 부분은 리모델링하기 이전에도 시민의 것이었다. 중앙홀은 시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용 공간이었고, 전면 벽체는 건물의 벽체이기 이전에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 가로의 도시적인 입면이었다. 특정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나머지 공간 역시 이제 도서관으로서 재탄생하여 시민의 공간이 된 것이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옛 청사의 유적이 전시되어 있다. 문짝과 창문, 테라코타 장식, 경첩과 손잡이, 심지어 유리 돔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잘라낸, 철골 구조와 철근콘크리트 구조 일부분도 남아 있다. 새로 마감한 하얀 벽체들 사이에 허름한 벽체 하나가 서있다. 옛 벽체이다. 오랜 시간 덧대어진 마감을 모두 다 벗겨낸 벽체는, 90여 년 전 어느 장인의 손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창밖으로는 푸른 옥상 정원이 펼쳐져 있고, 신청사의 커튼월은 검푸른 파도가 되어 넘실거린다. 90여 년 전 세워진 건물의 흔적 앞에 서서 21세기의 새로운 건물이 만들어내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몸과 눈이 다른 시대에 선 듯도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건물은 지금 현재 우리 곁에 서 있다. 옛 건물과 새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이 공간 사이에 흘렀을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움직임의 물결 속에서 나도 함께 일렁이는 느낌이다.(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돌베개, 2013, pp340-344)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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