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문제연구소 2차 콜로키엄
'일제시대 무교 연구'조명해

▲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가 '일제시대 무교(巫敎) 연구'라는 주제로 12일 숭산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콜로키엄을 열었다.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가 '일제시대 무교(巫敎) 연구'라는 이색적인 주제로 콜로키엄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12일 숭산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번 제2차 콜로키엄은 일제시대 문화적 압박 속에서도 민간신앙 '무속'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효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열띤 토론의 장을 펼쳤다.

이중 경희대학교 이정재 민속학연구소장은 '소태산의 구사과정과 무속상관성 연구'를 주제로 소태산이 구도과정에서 겪은 일화 중 '처사를 시험한 일'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는 정산종사가 기술한 〈불법연구회 창건사〉에서 처음 소개됐고, 이후 〈원불교 교사〉에 수록돼 전해지고 있다.

이정재 소장은 "이 일화는 처화(소태산의 청년시절 이름)가 나고 자란 길룡리의 당시 시대상황을 알아야 한다"며 "소태산이 교리를 정립할 때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고 그 중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그는 "새로운 사상이나 종교는 기존의 사상과 제도를 극복해야 하는 필연에 놓이는데 당시 신종교는 그 방법이 상생과 소통 및 통합을 지향했다"며 무속과 소태산의 구도 과정의 비교고찰에 대한 배경을 밝혔다. 처화가 생장한 길룡리는 조선의 정통과 풍습이 온전히 남아 있던 마을이었다. 그는 "처화의 성향으로 볼 때 그가 자라면서 봤던 기이한 전승이나 현상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는 〈원불교 교사〉에서 "그 후로는 길에 이상한 사람이나 걸인이 있어도 그가 혹 도사가 아닌가 하여 청하여 시험해 보시며, 또한 어디에 이인이나 은사가 있다고 하면 반드시 찾아가 보시고, 혹은 청하여 같이 지내시며 시험해 보기도 하여, 그 후 6년간 도사를 찾아 일천정성을 다 들이시었다"는 내용으로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처사를 시험한 일'에 대한 일화에 특별히 집중하게 된 이유도 밝혔다. 그는 "우선 잘 알려지지 않는 전문 용어가 다수 등장하고, 일목요연한 내용으로 기승전결의 짜임새 있는 구성을 했다는 점, 처사를 데려오는데 부모가 개입했고, 의식을 위해 농우 한 마리라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지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다른 일화와 달리 그 대상이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의식을 치러야만 했던 배경과 민속문화적 상황이 모두 당시 실제 상황을 전제로 한 점도 주목했다. 이는 처사 시험이 당시 한국전통의 민속문화를 잘 대변하는 일화라는 뜻이다.

그는 "일체의 신격과 그의 대한 우상숭배를 배척했던 처화가 유독 민간신앙의 신격에 대해서는 다른 자세를 보여준 특이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처사를 일거에 배격하지 않고 신장을 불러보라 했던 점, '육정육갑'(신장의 하나)이 언급된 점은 특히 그렇다. 이는 처화가 평소 민간신앙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일화에서 나타난 문학적 모순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그대로 남겨뒀다. 그는 "멀리서 초청된 처사를 대하는 처화의 자세가 거칠었다는 점과 신장 현현에 자신했던 처사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새벽 월담도주를 했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처사 시험한 일'에 나타난 일화의 원형 재구를 제안했다. 그 중 하나는 '사제의 례'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보통 제가집에 온 처사는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며, 제가집의 당사자와 신령 통령의 문제나 육정육갑의 문제를 논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지적하며 "모든 굿이 끝나면 경무들은 신속히 뒷정리를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이 상례이니 처화의 일화에서 이를 월담하여 도망한 것으로 표현한 듯하다"고 문제를 짚었다. 하지만 이 외 일화의 내용은 대부분 좌무(앉은굿)의 절차와 일치하고 있음을 밝히며 서사의 비틀림은 차후 수정을 요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화가 처사를 초빙하고, 방을 정하게 하고 평소 외우는 경을 밤 새워 독송하여 신장을 불러들이고자 한 점은 현재의 민속문화적 지식으로는 좌무와 연결될 가능성이 짙다"고 보았다. 또한 "신장 부르기가 여의치 앉자 부정을 이유로 방을 바꾼 일도 여전히 오늘날 초래되는 좌무의 한 과정이다"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화의 좌무 상관성을 확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오히려 신종교에 두루 나타나는 유불선의 영향관계를 더 살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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