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활동의 보람

▲ 전형도 원무 / 해룡중학교
원기63년 원불교 첫 만남

처처불상 사사불공 눈길 끌어

인농 가슴에 품고 학생지도


내 고향은 전북 진안이다. 전북에서도 무진장이라고 할 정도로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교통이 발달되면서 옛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고장이다. 자주 가지는 못해도 항상 마음의 고향임을 자부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한다.

이곳에서 나는 원불교를 처음 만나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그때가 원기63년이었으니 상당히 오랜 인연이라 생각된다.

학교 후배가 교당에 가보자고 해서 토요일 오후에 따라 갔는데, 마당에 잔디가 깔려있는 한옥의 분위기가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도 처음 같지가 않고,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처음에 나를 자상한 미소로 반겨 맞이해준 분이 지금은 퇴임해 여자원로수도원에서 정양 중인 박공원 원로교무다.

그 당시에는 종교라는 것이 나를 얽매이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 가본 교당에서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는 단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속 깊은 뜻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부담이 없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서원을 세우라고 말했지만, 그때는 그 깊은 의미를 잘 몰랐었다.

인연이 되어서 원광대 국사교육과에 진학을 하고 나서는 원불교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한의학과 학생들이 많이 가입한 '선우회'라는 동아리로, 명상과 선을 하면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였다.

처음에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곳이 원불교 근원성지가 있는 영광 해룡중·고등학교였다. 참 인연이 깊다.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인연 복이라 했는데, 그때 봉사활동을 했던 이곳에서 지금도 교직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 처음 교장실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인농(人農)'이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인농! 그래, 바로 이거구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이거다' 싶은 처음의 생각이었는데, 그 마음이 그 뒤의 교직생활의 전부로 자리 잡게 됐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나의 교직 생활은 항상 학생들과 함께 웃고, 힘들어 하면서 많은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즐겁기만 하다. 지금까지 '인농'의 글귀를 항상 가슴속에 품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렇게 인연을 만들어 가던 중, 원기94년 조원오 교무로부터 원무 지원을 제안 받았다. 원무가 뭔지도 모르고 '뭔가 할 일이 있겠지'하는 생각에 무작정 대답을 하고 사령장을 받았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열정을 쏟으면 욕은 먹지 않겠지.' 대학 때 이루지 못했던 성직의 꿈을 대신 이루는 거라 생각하고 감사와 은혜생활로 서원을 세웠다.

원무훈련을 하는 동안 기존에 활동했던 원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교당에만 오래 다녔지 너무 공부를 안 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원무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원무를 하니까 책임감도 생기고, 하고자 하는 의욕도 커지고, 교당을 보는 눈과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생교화와 교당의 일꾼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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