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27

▲ 나성제 교무
나라고 하는 존재는 알고 보면 사은의 공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사사로움으로 취하려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끝내는 얻지 못하는 것이며 얻는다 하여도 다시 물거품처럼 사라져간다.

그것도 단순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공덕까지도 훼손시켜 버린다. 그것이 사사로움의 속성이며 결과이다.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대지를 밟노라면 성성하게 천지 기운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고, 가을 산 들녁에 여기저기 구절초랑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평화로움과 경이로움이 아우러진다. 그저 하늘과 땅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다가도 우리는 왜 살아가면서 가끔씩 마음이 힘들고 불안해 하는가. 내 마음 안에 사사가 있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냥 턱 내려놓고 법신불 사은전에 맡기면 될 터인데 그것이 그토록 맡겨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래 없는 나이지만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무명업장에 가려서 무거운 짐을 스스로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산상기도 터에 다녀오다 보면 길가에 여러 가지 이름없는 들꽃을 만나게 된다.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행으로 욕심에 떠밀려서 남을 괴롭히고 업을 지었을 것인가 생각하면 그 이름없는 풀꽃 앞에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특히 수천년 동안 많은 조사와 선사들이 무위의 생활을 하면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실제로 진면목을 보이면서 그분들의 심월로 비추는 달빛에 수많은 중생들이 의지하며 살아왔다.
중생의 안식처가 되어 부처님의 맥을 이어주신 그분들이 불현 듯 떠오르며 감사하고 감사하다.

대종사는 현 시대에 맞는 수행의 길과 신앙의 길을 자세히 밝혀 천여래 만보살의 여래회상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길은 곧 무아봉공의 길이다.
현대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로 사은사요의 실천 덕목을 밝혀 주었다. 그길은 오직 감사와 공익을 위한 길이다.

이제는 손꼽을 정도의 이름있는 선사들만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민초들이 누구나 이 공부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스스로 뿐 만 아니라 중생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천여래 만보살의 여래회상의 대열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 구인선진들은 이미 오직 공을 위한 무아봉공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의 몫은 무엇인가.
선진들이 보여준 그 얼을 체받아서 사 없는 공익의 생활로 인류사회에 빛이 되는 것이다. 사사로운 마음이나 행으로는 개인이나 어떠한 조직이나 단체라도 설 수도 없고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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