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5년 전 밴쿠버에 온 이후 해가 갈수록 농사짓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조그만 텃밭이지만 심고 가꾸고 나누는 가운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기쁨과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죠.

한 알의 씨앗이 땅에 심어져서 싹이 트고, 완숙한 채소가 되고, 또다시 씨앗을 맺어 다음 해를 기약하는 등 일련의 과정은 한 편의 윤회하는 인생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농사의 시작은 토양이죠. 씨앗이 준비되었으면 땅부터 가꿔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박토에서는 잘 자라기 힘들기 때문이죠. 거름을 하고 땅을 잘 골라준 후에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씨를 뿌려야지 하는 마음' 만으로는 안 되죠. 적절한 시기에 씨앗의 성질에 따라 빛의 양과 토질이 적절한 곳에 심고, 심은 후에도 물의 양을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같은 조건으로 심고 가꾸어도 자라는 모습에는 천양지차가 생겨나죠. 씨앗의 품질 문제입니다. 좋은 채소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좋은 씨앗이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건 당연지사겠죠?

그렇게 잘 선별된 씨앗을 비옥한 땅에 심고 가꾸는데도 보통 정성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난데없는 우박, 떡잎을 통째로 갉아 먹는 달팽이, 땅을 파서 어린 싹들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다람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자랄 때까지는 얼마나 정성과 관리가 필요한지 모르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낳고 기르고 가르쳐주는 부모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자기가 지은대로 받는다고 하지만, 낳아주는 부모가 없이 사람 몸으로 탄생할 수는 없죠. 태어났다고 해도 무자력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고 보살피면서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서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해주셨죠.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부모님으로부터 입은 그 고마운 은혜를 갚아갈 수 있을까요?

"1. 공부의 요도(要道)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빠짐없이 밟을 것이요, 2. 부모가 무자력할 경우에는 힘 미치는 대로 심지(心志)의 안락과 육체의 봉양을 드릴 것이요, 3. 부모가 생존하시거나 열반(涅槃)하신 후나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와 같이 보호할 것이요, 4. 부모가 열반하신 후에는 역사와 영상을 봉안하여 길이 기념할 것이니라."(부모 보은의 조목)

부모님은 우리 스스로가 잘 되는 것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진리를 믿고 원만한 인격을 양성하여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는 큰 효가 되죠. 또한 실질적으로도 부모님의 심지의 안정과 육체적 보살핌을 잊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타인의 부모라도 무자력한 분들은 보호하며, 부모님 열반 후에도 추모의 정으로 길이 기념하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겁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지만, 부모님 은혜를 잊지 않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점점 심각해지는 노인 우울증이나 외로움, 존재감의 상실 등은 우리들의 부모 보은을 돌아보게 하죠.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써보세요. 타인의 부모라도 무자력한 분을 위해 한 번 더 마음을 전해보세요.

열반하신 부모님께는 어떻게 보은을 할 수 있을까요?
일 년에 1번 기일을 지켜 열반 기념제라도 정성껏 모셔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밴쿠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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