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활동의 보람

▲ 전형도 원무 / 해룡중학교
원기74년 봉사활동의 인연으로 영광에 생활터전을 마련하게 됐다. 당시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교사 발령이 거의 없었는데 나에게 학교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나한테 온 하나의 기회로 생각했다. 동아리 활동의 인연으로 이곳에 다시 정식 교사로 인연돼 왔다는 사실이 정말로 꿈만 같았다.

이런 인연으로 교립학교인 해룡중학교에 근무하면서 내가 이루지 못한 성직의 꿈을 학생들을 상대로 교화하며 펼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1,2년은 상황을 잘 알지 못해서 상황을 확인하고, 학생교화를 하기로 했다. 당시에 해룡고등학교에 황명신 교무가 있어서 그 지도아래 학생교화를 할 수 있었다. 영광은 원불교 성지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세도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학생교화에도 조심스러웠다. 학생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도 해룡중학교 학생회 임원들을 매년 4월에 리더십 향상과 인성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장소에 따라 반대하는 부모들도 있다.

황명신 교무는 학생교화에 있어서 전적으로 나에게 일임하고 전체적인 것만 관리해 주었다. 그래서 학교를 교화의 텃밭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관리하면 많은 학생들을 입교시키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기 초에 1학년 학생들의 종교 현황을 확인하고 종교가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교를 시켰다. 그 수가 전체 학생의 반절이됐다. 그때는 학교에 법당이 마련되지 않아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교당에 가서 봉고차를 가져와 학생들을 태우고 교당에 가서 법회를 보았다. 점심 전이라 라면도 끓여주고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학생들에게 놀이를 매개로 교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교당 학생법회를 담당했던 고원국 교무는 학생들의 공부도 봐주고 학생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 결과 한때는 전국에서 학생회원 수가 가장 많은 교당이기도 했다. 그렇게 교당에 데리고 가면 시끌벅적해서 활기가 차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밌었다. 물론 불만을 가진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지속적인 교화로 자발적인 학생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반강제로 활동을 강요해 나를 무서워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를 알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학생이 그 중 반절은 됐다. 이 학생들이 모두 원불교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중에 반절만 교화가 되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 종교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원불교'라고 답해 주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학생교화가 활성화 됐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교당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는 교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나 혼자만의 열정이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내가 학생 때 열심히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라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기쁘게 교화한 대가로 난 큰 선물을 받았다. 원기88년에 전국 교화대상 시상에서 교당의 추천으로 수상을 하게 됐다. 상을 주는 의미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학생교화에 더 열정과 사랑을 가지게 됐다. 그 열정이 지금의 원무활동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학생교화를 하면서도 종교가 다른 학생들이 있으면 원불교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 못한다. 그 대안으로 교법을 인성교육과 접목해 수업시작 전에 이야기해 주고 수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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