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화연 교무 / 은덕문화원
100년 전,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고 타국의 수탈 속에서 수난을 겪어야 했던 절망의 공간, 자기 나라의 말과 글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암담한 땅에서 새로운 종교가 탄생했다.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는 신분과 남녀의 차별을 깨고, 귀의하는 누구나 제도 받을 수 있는 신앙·수행의 길을 열었다. 극한의 절망 한가운데에서, 지구촌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21세기 오늘날, 양성평등·인권평등은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주류담론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어떤 기성종교도 원불교와 같은 차원의 양성평등은 실현하지 못했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20세기 원불교의 탄생은 종교대혁명이다. 원불교는 종교역사상 최초로 남녀와 성속의 차별을 철폐한 종교다'라고 규정할 것이다.

원불교는 그렇게 당대의 두터운 장벽을 깨부수고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던 새로운 길을 창조해왔다. 전라남도 영광, 익산 땅에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교단의 사명으로 삼고 경주해왔다. 탈문맥과 창조, 바로 노마디즘의 정신이다.
그러나 초창기의 그 눈부신 생생약동하는 정신이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일까?

원기100년 성업봉찬 사업이 곳곳에서 한창이다. 하나의 세계, 평화의 세계를 염원하는 기도, 신앙·수행의 적공, 분과별로 진행하는 여러 봉공활동 등, 그런데 무언가 빠진 듯한 아쉬운 느낌이 남아 있다. 불공은 정성들이는 만큼 어느 때엔가는 그 인과가 돌아오지만, 때와 방법에 따라 효과의 차이는 극명하게 갈린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의 대사회 불공법도 수정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세계 평화를 실현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무력 분쟁에서 여성과 여아에 대한 폭력이 근절되고, 여성의 지위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중지를 모은다. 200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결의안 1325호'가 바로 그 증거다.

이런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단순히 여성운동, 또는 페미니즘이라는 틀에 가두어 왜곡하는 것은 곤란하다.

본질적으로는 여성, 여아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강자가 무분별하게 휘두르는 육체적·정신적 폭력을 멈추고 어떻게 평화를 실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참여는 평화 실현으로 가는 최단거리중의 하나다. 국제사회의 유일한 분단국가, 잠재적 무력 분쟁지역인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강제송환의 위협과 인신매매 속에서 중국, 동남아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는 수많은 탈북여성들, 식민통치시대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 가슴 아픈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5월30일, 은덕문화원에서는 '여성과 아동의 안전을 위한 평화의 뜰' 후원 잔치를 마련해 '위안부 활동 노벨평화상 추천 대화마당'을 열었다.

은덕문화원 이선종 원장은 후원회장과 이사로 활동하는 여성평화외교포럼(여평외교·이사장 신낙균)과 한국여성변호사회가 함께했다. 9월11일에는 북한이탈여성들을 '(사)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후원의 밤 행사를 열었다. 남북여성들이 함께하는 합창단 '여울림'의 아리랑 이음곡이 법당에서 울려퍼지자 다들 눈시울이 빨개지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과 감동이 번졌다.

이런 소중한 순간들, 중요한 운동들을 교단의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방 직후 이루어진 전재동포구호사업은 원불교가 한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감동의 시발점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없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함께 맞대고 나갈 때, 원불교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은덕문화원의 역량만으로는 참여와 지속적인 지원에 한계가 있다. 탈북여성, 여성인권에 도움을 보태고 싶은 분들의 동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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