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밴쿠버교당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며, 또 어떤 사람은 해도 해도 잘 되지 않죠. 무슨 차이일까요?

세상사 모든 일이 그 되어지는 길이 있죠. 되는 길로 가면 되고, 안되는 길로 가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 길을 잘 알아서 되는 길로 가면 아무래도 수월하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겠죠. 그 길이 바로 '법'입니다. 법대로 하면 쉽다는 거죠.

그럼 법을 알아야겠네요. 무엇이 법인지를 알면 그 법을 따라 살면 되니까요.

일단 법(法)이라는 한문은 물 수(水)와 갈 거(去)가 합쳐진 것으로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순리를 따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순리를 따라 정한, 서로 지키자는 약속과 같은 각종 규범,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등이 모두 법이라 할 수 있고, 그러한 순리, 도리, 참된 이치 자체를 법이라고 할 수 있죠. 말하자면 '지키는 것, 진리'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와 '법, 법률, 규범, 규칙' 등을 의미하는 로(law)를 떠올리면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집니다. 그러므로 이 두 법을 잘 알아서 이 법대로 살면 되죠.

법은 따르고, 법이 아닌 건 범하지 않는 겁니다. 법이 아니라면 어떤 편리나 이익이라도 과감하게 물리치고, 법이라면 어떤 손해를 보거나 불편하더라도 지키도록 노력해야죠. 그리고 이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합니다. 나는 편한대로 살고, 다른 사람에게는 지키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함께 지켜야 할 법이 없다면 약자는 보호받을 수 없고, 심지어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호등 없는 거리, 규정 없는 기관이나 시설. 상상이 되나요? 길을 걷다 힘 센 사람에게 맞아도 하소연할 법이 없다면 하루 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불안할지.

그러니 무의식 중에 입고 있는 수많은 법의 은혜를 알아서 보은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디를 가든지 '법의 보호를 받아, 갈수록 구속은 없어지고 자유를 얻게 되며, 각자의 인격도 향상되며 세상도 질서가 정연하고 사·농·공·상이 더욱 발달하여 다시 없는 안락세계가 될 것이며, 또는 입법·치법의 은혜도 갚음이 될' 뿐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게 되죠.

그렇다면 이 법의 은혜를 누구에게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지금처럼 지혜롭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성자가 천지의 이 법을 보아서 인사를 제정한 도덕을 비롯하여 그 외 입법자들이 제정한 법과 그리고, 도덕이나 법을 제정한 입법자와 도덕이나 법에 따라 다스리는 치법자'들의 덕입니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 법을 지키는 일이죠. 법이 아닌 건 생각하지도 말고, 유혹당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을 알아서 법대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죠. '남들은 안 지키는데 나만 지키다 손해보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도 되고, 불법의 달콤함에 유혹당하지 않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진리를 아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건, 인과의 진리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고 세상의 법들을 지키기가 용이해진다는 거죠. 우리가 교화를 하고, 공부를 하는 이유입니다. 진리의 문에 들어오지 않으신 분, 안으로 들어오세요. 문에 들어오신 분, 법대로 삽시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서, 진리대로 사는 삶.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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