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복인 총장 / 미주선학대학원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미국32대 대통령으로 4선(1932-1945)을 역임했으니, 대통령 임기로 볼 때 역사상 유일 무일한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 최대의 시련인 대공황기를 맞게 되었는데 그가 힘들고 험난했던 대공황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근원은 바로 그가 30대 말부터 40대 중반까지 어려운 병고를 견디어내며 얻어진 인고의 힘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루즈벨트는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 최고 명문의 교육을 받았으며, 정치적인 배경(경제적 배경)이 안정된 가문이었기에 38세의 젊은 나이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각광을 받았으며, 그의 사십대는 앞길이 양양했다. 그러나 이같은 밝은 전망이 하루아침 검고 검은 먹구름으로 가리워졌다. 그가 39세의 나이에 대체로 유년기에나 앓게 되는 소아마비 바이러스 감염으로 전신 마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39세에서 46세까지 7년간의 투병기간동안 그는 온 힘을 다해 재활운동에 힘썼다. 그리하여 상체의 운동능력을 회복했고, 마침내, 하체의 근육도 하나하나 집중적으로 단련해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됐다. 루즈벨트에게 7년의 투병기간은 인고의 시간이었으나, 그는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는 인내와 지혜의 힘을 쌓게 된 것이다.

미국의 최대시련기인 대공황을 극복하는데 루즈벨트는 무엇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면, 누구의 의견이 되었든지 가릴 것 없이 시도했다고 한다. 전신마비를 벗어나고자 그는 갖가지의 시도를 모두 다 수용·노력하였으며 수많은 도전가운데 실패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실패를 통해서라도 배우며, 발전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루즈벨트의 인내심은 또한 공황 해결 속도가 더디거나 뒷 걸음치더라도 그 해결안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실적이 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그의 탁월한 천성이었다. 만약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을 이루며 한 번도 실패와 좌절을 모르는 운 좋은 대통령이라고 가정해보자. 완벽히 제2의 천성이 된 그의 깊은 인내심이 없었다면 갖가지 시도 중에 발생하는 실패의 책임을 실무팀에게 질책하거나 하여, 그들이 또 다른 새로운 시도들을 용기 있게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공황을 극복하리라는 열망은 그가 정치계에 복귀하고자하는 열망처럼 강렬하였다. 루즈벨트는 연설단상인 아포디움에 내 발로 걸어가고 내 스스로 선채로 연설할 수 있을 때 정치계에 복귀하리라는 굳은 각오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그의 인고의 노력은 미국의 대공황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근원이 확실하다. 1929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위기는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1932년에 최악의 시련을 맞이했다. 그는 1차와 2차의 뉴딜 정책을 실시했고, 1935년부터 조금씩 경기가 회복되면서 공황을 극복하게 됐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교단품에서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함에 하늘에서 먼저 시험해보는 이치가 있다"라고 했다. 루즈벨트의 시련은 하늘의 시험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자신의 건강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해결해 갈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2세기를 맞이하는 교단을 노대 종단들과 비교할 때 아직 너무나 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용기와 유연성과 창조성이 너무 약해진 것은 아닐까? 교단의 '집단적 인내심'의 정도는 얼마나 될까? 그동안 운이 좋아서 쉽게 성공한 사례들로 인하여 어떤 실패도 감당하지 못하고 실패의 책임을 지나치게 질책하므로 새로운 시도를 완전 봉쇄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지는 않았나?

교단 구성원 각자! 제생의세의 열망은 얼마나 간절한가? 구성원 각자들에게 이 열망이 사무칠 때 소태산 대종사께서 염원하시고 부촉하신 지상낙원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주세교단의 큰 일을 맡기려함에 하늘에서 시험이 분명이 있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사회의 병증을 낱낱이 들어 밝히시며 "사회가 병이 들었는데도 그 지도자가 치료에 정성이 없다면 그 사회는 필경 파멸의 지경에까지 이른다"고 했다. 교단의 실정 또한 적나라하게 검토해 볼 때이다. 교단의 병증을 치료하고서야 주세불이신 대종사께서 펴주신 주세교법의 경륜을 이 세상에 전하는 주세교단의 몫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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