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인식이 끝난 후 민산 이중정 원정사의 장례차량이 문상객들과 함께 중앙총부를 경유하고 있다.
민산 이중정 원정사님!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 그대로 늘 우리를 그 자리에서 지켜줄 것만 같으시더니, 원불교 100년 성업의 결실을 채 거두기도 전에, 아무 미련도 없이 이렇게 홀연히 수양 길을 떠나시나이까?
지나는 바람결에 스승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으시다는 소식은 가끔 들었지만, 100년 성업의 결실은 보시고 떠나시겠지 하는 생각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가 불현듯 날아든 영이별 소식에 가슴 한구석이 허허롭기만 합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떠나시던 날 밤 잠 못 이루고 홀로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바라보다가, 푸르른 가을달빛 벗 삼아 낡은 수레도 벗어버리고 질긴 인연의 끈도 모두 놓아버리고 휘적휘적 떠나시는 그 심경이 얼마나 한가로우실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민산 이중정 원정사님!
모두 다 벗어버리시고 모두 다 놓아버리시고 유유자적 홀로 떠나시는 그 수양길이 얼마나 자유롭고 또 얼마나 은혜로우십니까?
남아있는 저희들에게야 오늘의 영이별이 천붕지통의 슬픔이오나 머지않아 새 몸으로 다시 오실 스승님께는 환희용약의 기쁨이시겠지요. 스승님께서는 저희들을 만나면 "소년에는 도학을 배우고 중년에는 제도 사업을 하고 말년에는 수양에 전력하라"하신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표준으로 나는 일생을 정진하며 살았다고 자주 회고를 하셨습니다.
스승님께서 저희 곁을 말없이 떠나신 뒤 스승님의 발자취를 더듬다가 정말 스승님의 일생이야 말로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나침판 삼아 오롯하게 살아오신 전무출신의 삶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민산 이중정 원정사님!
스승님께서는 일곱 살 어린나이에 삼세의 오랜 숙연으로 소태산 대종사님을 친견하신 후 스승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용화회상 미륵회상 건설의 역군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슴깊이 간직해 오시다가 16살 어린 나이에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출가를 단행하시어 일생을 오롯이 이 회상 이 공도의 주인으로 살아오셨지요. 소년에는 도학에 큰 관심을 갖으시고 정산종사님과 주산종사님, 숭산 종사님과 같은 큰 스승님들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며 구전심수를 바탕으로 용맹 정진하시었고, 청장년기에는 원광대학교와 원광고등학교, 동산선원과 중앙훈련원 등지에서 교단의 동량을 길러내는데 힘쓰셨으며, 퇴임을 앞두고는 오랜 꿈이자 염원이셨던 교화일선에 나가 마산교구장 재임 6년 동안 20여개의 교당을 확충하는 등 교화의 불꽃을 화려하게 수놓으셨고, 퇴임 후에는 '노년에는 수양을 하라'는 스승님의 말씀을 받들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노구를 이끌고 대각전에 나오시어 후진들과 함께 정진적공 하시며 수행인의 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민산 이중정 원정사님!
총부에 들어서면 언제나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저희를 맞아주시던 그 자비 성안을, 스승님의 말씀을 오롯이 전하시겠다는 전법 일념으로 '기함영지 합기영지'를 설해주시던 그 자비 성음을, 타고난 해학과 재치로 늘 주위를 화하도록 하시었던 그 넉넉한 그 자비 성품을 저희는 이제 또 어디가서 다시 만나 뵙고 들을 수 있을 런지요.
불민한 저희로서는이렇게 스승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불생불멸의 이치를 따라 다시 오실 것을 믿사옵기에 오늘은 두어줄 고사로 이렇게 석별의 정을 대신하고자 하오니 이제 이생에 못다 이루신 유업일랑 저희 후진들에게 모두 맡겨 놓으시고, 대종사님과 역대 스승님들 곁에서 잠시 편히 쉬셨다가 다시 이 회상에 오실 때에는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크신 성자로 다시 오시옵소서. 민산 원정사 존영이시여! 조감하시옵소서.

원기100년 10월17일 교단대표 백인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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