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相)이 상(相)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은 세간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도 인간의 몸으로 예수님도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 그 일을 하신 것이다. 몸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팔만 사천 법문을 말할 수 있고 수행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신은 진리의 체(體)가 되고 화신은 진리의 용(用)이 되는 것이다. 보신(報身)은 처음 마음먹었던 시기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으로 법신과 응화신의 중간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삼신불(三身佛) 사상은 부처님 당대가 아닌 후대에 생긴 용어이다.

여기에서 신상(身相)은 법신과 화신을 얘기하는 것이고 보신은 빠진 상태이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질문하신 신상은 몸으로 나타난 형상을 가지고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고 수보리에게 물어보신 것이다. 그러자 수보리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즉 법신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있지만 화신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불교는 법신 쪽으로 방향이 서있는 반면 기독교는 화신 쪽으로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자체가 하나님인 것으로 예수 자체가 법신인 것이다. 기독교는 법신인 하나님과 화신인 예수님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많은 병폐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화신으로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예수님도 육신은 죽고 역사적으로 이름만 남아 있는 것처럼 화신은 모두가 변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신상(身相)은 응화신으로서 신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변하는 것이기에 참 여래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상이 곧 신상이 아닌 까닭이옵니다."

수보리는 법신과 화신의 차이점을 깨닫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신상은 중생들이 생각하는 화신으로써의 신상이 아니라 법신으로서 신상이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즉 겉으로 나타난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이 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고하시되 "무릇 형상 있는 바가 다 이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우리 중생들은 모두가 속으며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변하고 있는데 그것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첫인상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은 그때그때 수없이 달라지는데 첫인상이 고정관념으로 박혀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중생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위 계급 명예 권력 추억 등도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모든 고정관념은 허망한 것이라고 했다.

대산 종법사 시절에 있었던 일로써 당시 감찰원장이 징계에 관한 재가를 올리니 말씀하시기를 "법을 세우되 항상 길을 열어 주고 터주는 방향으로 원칙을 세우라. 남자나 여자나 일시적 환경이나 병적인 심리현상으로 이상한 성격이 발양되어 일을 저지를 수가 있으니 그 때만 잘 넘기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누구나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불이과(不貳過)하도록 선도(善導)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징계 대상에 오른 사람들에 대하여도 앞으로 삼년의 기간을 두고 실적을 보아서 완전 말소시키도록 하여야 한다. 대종사님 당대에도 그렇게 하셨으니, 지금은 문서를 두었다가 삼년 뒤에는 처리하도록 하라. 일시적인 것으로 그들의 영생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하시고 3년 전의 일은 묻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다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보통 우리들은 한번 잘못한 사람을 보면 몇 년이 흘러도 잘못한 시절 그 사람으로 그냥 평가하고 판단해 버린다. 겉으로 들어난 형상으로나 마음속 관념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결론을 내리시게 되는데 겉으로 들어난 형상이나 마음속 관념 모두가 허망을 아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되려면 무아(無我)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서론에서 금강경을 벼락경이라고 하였듯이 그 벼락을 나에게 쳐서 나를 없애는 것이 금강경의 핵심이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사구게(四句偈)라고 표현하는데 진리를 깨친 내용을 함축 요약하여 매우 깊은 뜻을 사구 형식으로 담아 내는 것이다.

대종사님 게송도 '①유는 무로 무는 유로 ②돌고 돌아 지극하면 ③유와 무가 구공이나 ④구공 역시 구족이라' 처럼 사구게로 되어 있다. 모든 상(相)이 상(相) 아님을 보면 여래라고 하였듯이 견성이라는 것은 무아를 확인하는 것이다.

무아가 되었을 때 진정한 무아봉공 무시선 무처선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원불교에서 대각전에 모셔진 일원상을 '법신불 사은'이라고 하듯이 진리 당체 모습을 상징화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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