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가난과 고독의 시대
공동체적 삶이 정신적 위안
원불교 교화단, 대안될 수 있어

▲ 정수인 교도 / 부곡교당
아침에 대문을 나서면 동네에서 몇 집 건너 바람에 무수히 펄럭이는 재개발 반대 깃발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각각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로 반목하는 이웃들에게 좀 더 큰 공동의 가치를 생각하지 못함에 안타까움이 앞서고 자연스레 인정 넘쳤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길에서 이웃 어른을 만나면 몇 번이고 인사를 했고, 어른들도 대답을 해주시며 당연히 어느 집의 자녀인지 이름까지도 아셨다. 맛있는 음식을 했을 땐 기쁜 마음으로 나누었고 경조사엔 진심을 다해 축하와 슬픔을 함께 했었다.

몇 해 전 주차공간을 이웃에게 무상제공 했더니 놀랍게도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가까운 이웃들이 온갖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해서 기가 찰 노릇이었다. 협박성 문구까지 붙여도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 게릴라 가드닝 생각이 나서 콘크리트 바닥을 깨고 흙과 거름을 붓고 나무와 꽃을 심어 녹색공간을 만들었더니 새들과 꿀벌이 날아드는 녹색공간이 되었다. 텃밭도 약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으니 소통이 저절로 되었다.

며칠 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접하면서 적잖게 씁쓸함을 느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최하위권인데다, 삶의 만족도는 34개 회원국 중 27위였다. 게다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이웃을 챙겨줄 여유가 적어지면서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에 대한 답은 OECD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그동안 산업화 사회를 살아오면서 마을 공동체에 대한 기능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온 결과인 것 같다.

앞으로 우리사회는 고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오래 살게 되었는데 경제력이 없으니 인간관계마저 끊어지기 때문이다. 가난과 고독의 확대를 막으려면 가족의 재구성과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등을 준비해야 된다.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의 시작을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 공동체건설로 하면 어떨까? 실제 일본의 경우 이미 연고자는 있어도 기능을 하지 않는 무연사회의 직전단계인 독신사회에 접어들었으며, 고령자에게 이웃 만드는 방법과 친구 만들기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생겼다한다.

우리 원불교 초기 교단에 있어 저축조합운동이나 정관평 방언공사를 통한 상호부조와 교단 설립의 경제적 기반 마련도 공동체 정신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의 뿌리를 살려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불법연구회 시대에는 출가 재가 모두 대종사의 가족으로서 일체의식을 가지고 한 동기처럼 살아서 당시 총부는 일반 사회보다 훨씬 살기가 좋았다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대종사 친히 챙겨 상조부 등을 통하여 살 길을 열어 주었으며, 여력 있는 교도들이 집이 없는 대종사님 제자들의 집을 지어 주기도 하였고 전무출신의 사가를 안정시켜서 공도에 전념케 하는 등의 배려를 보고 당시 동아일보 기자는 '맑은 호수가의 이상촌'이란 극찬을 했다하니 우리도 다양한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공동체정신의 계승을 논의해야 될 시기라 본다.

이미 교당차원에서 시작을 한 곳도 있는 것 같다. 부산 덕천종합사회복지관의 '더불어 함께 사는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군 교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낸 김화교당의 지역사회 공동체사업인 '마을 그림공모전'과 '와수리가 미(米)쳤어'라는 쌀 축제, 사회복지법인 삼동회에서 운영하는 종합복지관의 '참살이 마을활동가' 프로그램, 영산성지공동체의'살고자픈 영산마을' 등이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공동체는 주거, 종교, 예능, 문화, 육아, 원불교 성지 답사 공동체 등 같은 뜻으로 서너명만 모여도 만들어 진다.

원불교의 교화단도 하나의 공동체라 본다. 단을 중심으로 단원들끼리 취미나 관심영역별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이런 공동체에 비교도도 함께 동참시킨다면 자연스럽게 교화사업이 되어 둘이면서 하나 되어 함께 더불어 사는 신뢰사회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으며, 현실의 고단함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을 꿈꾸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가 기다려진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