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화일기 1

▲ 9월5일 베를린교당이 이전 봉불식을 거행됐다.
▲ 김하은 교무 / 베를린교당
2012년 1월 베를린교당에 부임하여 현재까지 3년하고 절반이 지나갔다. 3년째 되던 지난해 6월 목탁도 제대로 칠 수 없는, 교화 장소로 부적하다고 판단된 기존 교당으로 있던 빌라를 매각했다. 매각 후 갈 곳이 없어 임대 컨테이너 창고에 짐을 넣고 민박집과 지인의 집을 동가식 서가숙 하며 교당으로 적합한 집을 찾아 베를린 전역을 헤매고 다녔다.

그 가운데 2014년 10월16일에는 법적 절차를 통해 '공익법인 원불교 베를린교당 - WON-Buddhistischer Tempel Berlin e.V.'을 독일 법원에 정식 등록했다. 당시 유로화가 하락하자 집값은 자꾸 오르고, 날은 추워졌지만 마음은 타들어가고 그렇게 서원만 깊어질 뿐이었다.

오죽 했으면 9월21일에는 베를린 한인회 주체로 열리는 '제3회 손기정 기념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였을까. 진리계의 인증을 받으리라는 다짐으로 베를린 교당 새로운 터전 마련과 교화 발전이라는 서원을 담고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이겨내며 꼴찌지만 10㎞ 완주를 해냈다. 진리계에 떼를 쓰고 몸부림 쳤던 마라톤 대회가 지나고 108일! 마침내 서럽고 조급했던 긴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베를린 서쪽 스판다우(Spandau 구 서베를린) 지역에 대지 1373㎡ 건평 145.35㎡의 단독 주택을 찾았고 원기100년 1월16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매입 절차를 마쳤다.

그리고 4월1일 이사를 해 9월5일 남궁성 교정원장과 120여명의 재가 출가교도를 모시고 봉불식을 치루기까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겨운 긴 여름이 꿈같이 지나갔다. 교단 어른들이 말하기를 "원기100년에 네가 큰 효도 했다"고 하지만 이 모두가 사은님의 은혜요 좌산상사와 경산종법사를 위시해 많은 선후진들과 교도들의 염원과 후원의 결정체임을 잊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음으로 양으로 후원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베를린(Berlin)은 위도상 몽골 정도의 위치에 있다. 2014년 현재 독일 8260만 명 중 베를린의 인구는 350여만 명으로, 독일 내 단일 규모로는 최대의 도시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 통일이 되면서 1991년에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되었다.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의 중심국이며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연합을 선두 지휘하는 나라이다. 유럽전역에 영향력이 있는 나라 독일의 수도가 바로 베를린이다. 동서독이 통일된 지 25년이 지난 수도 베를린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다.

베를린에는 본고장 독일인 이외에 인구의 26%가 외국인으로 독일 전체 16개 주 정부 중에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중 절반은 터키인들이지만 그리스,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인들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도 살고 있다. 베를린 시민의 25%는 개신교인 루터교 신자이고, 10%는 로마 가톨릭교회이다. 또한 유대교와 외국인 이민자들에 의한 이슬람, 정교회도 존재하며 동남아지역의 불교는 물론 한국의 정토회(정혜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곳 독일인들 중 특히 지식층의 사람들은 불교와 선, 명상에 관심이 많이 있으며 현재 베를린에 있는 정토회 역시 불교대학을 펼칠 만큼 크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베를린교당의 새로운 출발은 유럽 교화에 참으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그러나 그동안 아쉽게도 원불교는 만고 대법임을 자랑하면서도 베를린에서는 그 위용을 떨치기는커녕 원불교를 지역사회에 알리기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베를린교당이 생긴 지는 14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2012년 베를린교당에 3대 교무로 부임하였을 때 교당이라고 불리기도 부끄러운 방안엔 일원상과 목탁 그리고 늘어진 생활 용품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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