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정태원 교도/잠실교당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낯선 나라가 주는 이질감 탓에 내 조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곳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누구보다 내 조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ROTC로 군복무를 마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애국심이 포스코에 입사한 뒤 한층 더 성숙해졌다. 더불어 오랫동안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가끔은 눈물 나도록 한국이 그리웠지만 가족들 덕분에 향수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 유럽과 인도는 가족 중심 사회라서 혼자 생활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외롭다. 그 중에서도 나는 독일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아이들의 개성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엽서에 나올 것 같은 근사한 집들도 독일이 좋아진 이유였다. 정원이 무척 예쁜 집이었는데, 지하창고에 그 집만의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이는 자신이 태어나던 해 그의 아버지가 준비해둔 와인이었다.

훗날 성인이 된 아들이 매년 생일마다 와인을 초청한 친구들과 한 잔씩 마신다고 한다. 그 남자의 나이가 예순이었으니, 와인의 역사도 60년이라는 뜻이다. 매년 한 잔의 와인을 마시며 그리운 아버지를 떠올렸을 그의 모습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되새겨 보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거리는 옛 것을 부수고 새 것을 짓느라 쉴 틈이 없다.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현대식 빌딩이 세워지면 복잡했던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리고 밝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중했던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가슴 한 편이 쓸쓸해져온다. 고즈넉한 옛 모습을 잃어버렸으니, 어린 시절의 향수조차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유럽에 가면 오래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데도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서양의 건축양식에서 오는 차이일까? 그 사실이 몹시 궁금했는데 머지않아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서양인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천지가 다보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찰에 가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은 물론 조상들의 뛰어난 예술성에 감탄하게 된다. 청·적·백·흑·황색으로 나무에 정성껏 그린 단청의 아름다움과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기와의 곡선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아함의 극치이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까지 감동시킨다.

다시 말해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없어도 김홍도와 신윤복이 있다. 베르사유 궁전과 쾰른 대성당은 없지만 경복궁과 불국사가 있다. 우리 것이 아름답고 위대하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면 곳곳에서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속의 한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것을 사랑할 때 가능해진다. 옛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가꿔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어느 사업가는 내게 "서울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며 "한국에는 훌륭한 건축가가 없는 모양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미국 타임지에 실렸던 건축가 김중업씨를 비롯해 류춘수씨 등 세계적 건축가를 열거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완강했다. 서울 4대문 안에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보다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 세워졌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정체성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니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몹시 부끄러웠다. 덕분에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눈앞에 이익을 좇는 것보다 우리의 것, 우리의 얼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의 위대함을 깨달아야 할 때가 지금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신앙하고 수행하는 원불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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