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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탐방/서울보화당한의원
기관탐방/서울보화당한의원
  • 안세명 기자
  • 승인 2015.11.06
  • 호수 17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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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상도 실천하는 최일선 교화도량'
신용과 정성으로 '상의 도'를 실천하는 일원의학 실현장
새로운 2세기를 열어가는 수도권 한방센터로서의 도약 꿈 꿔
▲ 서울보화당한의원 전 직원은 가족을 대하듯 세심한 관심과 정성스런 치료로 내원객들의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른쪽 세번째 손흥도 원장.
지난 46년, 한결같은 정성과 한방전문치료로 서울시민의 건강을 책임져 온 서울보화당한의원(이하 서울보화당).
'최일선 산업교화장'임을 자부하며 산업과 교화의 영육쌍전(靈肉雙全) 정신을 실천해 온 서울보화당은 2~3대로 이어지는 오래된 단골들이 주로 찾고 있다. 내원객들의 마음속 서울보화당은 한의원이 아닌 '따뜻한 인생 상담소'그 자체이다.

가족의 건강 책임지는 따뜻한 인생상담소

지난 36년 서울보화당에 재직 중인 제산 손흥도 원장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다. 손 원장은 "수많은 환자들이 서울보화당을 통해 건강을 회복함은 물론 원불교를 직접 접하는 교화현장임을 명심하고 있다"며 "몸의 질환도 치료해야 할 대상이지만, 마음의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환자들이 눈물바람도 많이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지와 고충을 정성스럽게 들어주다 보니, 오랫동안 기다리는 분들이 역정을 낼 때도 있다"고 보화당의 일상을 전했다.

서울보화당은 '의료'라는 매개체를 통해 원불교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마음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입교를 권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그만큼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전해지는 따뜻함은 직원들의 말투와 배려에 그대로 배어있다.

46년, 수도권 산업도량 개척 역사 일궈

교단은 초창기 재정자립의 확산을 위해 수도권으로의 활로 찾기에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변한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반백년기념성업을 기해 발판의 전기를 마련했다.

〈원불교교사〉 개교반백년의 결실편에는 서울보화당의 건립 당시 상황이 기록돼 있다. 교단의 산업기관들이 기복과 성쇠를 거듭하는 가운데 보화당은 이동안, 송혜환, 조희석 선진이 차례로 대표이사의 대를 이어 갔으며, 교단의 재정 확충에 큰 기여를 이뤄왔다. 보화당은 원기49년 9월, 보화경옥고를 주종목으로 하는 보화당 제약사를 창설하면서 상공업 병진 기업체가 됐고, 원기55년 7월 중앙 진출과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종로 5가에 서울보화당(회장 이공주, 사장 이철행)을 개설, 재단기업의 계열화를 시작했다.

대산종사는 서울보화당 개점봉불식에서 '신용과 의리로써 '상의 도(商道)를 실천하자'는 치사를 전달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우리가 먼저 상의 도를 개척하자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법을 써야 인류는 공생한다 ▷상부상조를 하여야 서로 살아 나간다 ▷시중(市中)에서 활선을 하며 세상을 돕는 활불(活佛)이 되자 ▷일원주의의 사명 아래 충실하고 믿음 있게 일하며 세계에 봉사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상의 도'에 바탕해 서울보화당의 역사는 시작됐고, 오늘날 각 산업기관의 정신적 효시가 되고 있다.

또한 서울보화당은 설립 당시 이리보화당과 서울수도원이 주체가 되어 총부 사업회 등의 공동출자로 출발했으나 원기59년 여자수도원이 직영하는 단독 수익사업체로 전환했다. 이를 기반으로 수도원 건립과 전무출신 후생복지 및 교화 현장에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역대 책임자로는 이공주, 이철행, 이백철, 박원근, 전종철, 김이현, 이후 송순봉, 김복환, 황영규, 김혜봉 여자수도원 원장이 회장을 역임했고, 최선국·윤경일·소종현·박성운(현재)교무의 헌신적 노력이 이를 뒷받침했다. 또한 교화와 후진양성에 힘쓴 결과 서울보화당 출신 전무출신 배출자만 해도 15명에 이른다.

전문의료인 양성, 수도권 진출 희망 키워

교단은 사업기관의 수도권 진출과 재정확충의 큰 희망을 걸었다. 이에 의료기관에 종사할 인재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서울보화당 사장으로 근무하던 이백철 원로교무의 추천에 의해, 손 원장의 추천인이었던 중산 정광훈 대봉도가 이 길을 적극 권유했다.

손 원장은 "교화에 뜻이 있던 관계로 처음에는 쉽게 마음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신도안 삼동원에서 대산종사의 법문을 받들고 서원을 굳혔다"며 "대산종사는 '너희들은 개척자(New Frontier)'가 돼야 한다. 앞으로 교화하는 교단, 훈련하는 교단, 실력 쌓는 교단, 개척하는 교단이 돼야 하는데 그 책임이 너희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때 마음을 정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원광대학교 총장이었던 문산 김정용 종사는 산업기관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손 교무에게 교수직과 보화당 일을 병행하게 해 학교와 교단의 두 몫을 책임지게 했다.

손 원장은 "한의과대학 교수와 보화당 진료의 역할을 3일씩 병행하여 근무했다"며 "오직 '실력이 최상'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침구학 분야에 집중했다. 원광대학교 교수 자격으로 24년간 봉직하니 보화당의 사회적 공신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산업기관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최근 손 원장은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장으로 한의과대학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평가인증 프로그램 정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원의학은 사람에 대한 경외가 우선

서울보화당은 대산종사가 천명한 양한방 협력의학, 심신의학, 환자중심의 치료의학인 '일원의학(一圓醫學)'의 실현장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즉 성리(性理)에 바탕 해 모든 의료진들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서로 만나져야 한다. 서울보화당은 이러한 일원의학의 견지에서 사람에 대한 경외와 사랑의 의술을 견지하고 있다. 지정의(知情意) 중심으로 실력을 배양하고, 열린 정신으로 마음병 치료에서 선진적으로 앞서가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특화진료는 단연 침구다. 탕약과 병행하되 '기운을 고르고 신을 다스린다(調氣治神)'는 한의학의 기본 원리에 바탕해 환자들의 기운 조절에 특별한 정성을 기울여 치료에 빠른 효과를 거두게 한다.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성욱 원장(성조· 안암교당)은 "서울보화당은 과잉진료가 없고, 환자들을 가족같이 알고 대하는 것이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믿음과 깊은 상담이 치료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침을 놓고 몇 번이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는 것도 그러한 관심에서 비롯한다"고 세심한 진료과정을 설명했다. 손 원장과 강성욱· 강민경 원장 모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출신이다.

서울보화당, 새로운 2세기 역할

손 원장은 구타원 이공주 종사에게 처음 인사하러 간 날을 회고했다. 이공주 종사는 2시간 동안 '공심(公心)'만을 강조하며, "요즘 사람들이 시대를 많이 얘기하는데,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기본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단의 삼대사업인 교화·교육·자선에 있어 한의학 분야가 의료자선사업의 하나의 큰 축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서울보화당의 미래를 희망한 것이다.

박성운 교무는 "최근 한의업계 불황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경제적 기여도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며 "서울보화당은 역대 선진들의 한결같은 염원에 힘입어 새로운 교단 2세기 준비에 만전을 기해 왔다. 일생을 교단에 헌신하신 여성 전무출신들의 노후를 보장하는 수도원 후원기관으로서 또한 산업 교화도량으로서 새로운 도약이 절실하다"고 변화의 기점에 서있음을 밝혔다. 서울보화당은 4대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수도권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위해 보화당 증축과 센터 건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손 원장은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제중원(濟衆院)'의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 수도권 교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요즘, 서울보화당의 숙제도 커져가고 있다"며 전 직원의 합심단결로 이소성대의 따뜻한 상의 도를 실천해 갈 것을 밝혔다.

서울보화당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9시에서 오후6시까지 운영한다. 명절 연휴에도 당일을 제외하곤 쉬지 않는다. 그렇게 지성(至誠)이다. 02)762-7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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