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도가 희어지면 내가 다시 온 줄 알아라'

지난주까지는 삼시(三時)사상에 대한 세 가지 견해 중 두 가지를 설명했다. 이번 내용도 우리 교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정법시대를 천년으로 보는 해석으로 육조 혜능까지를 말한다. 오조 홍인대사가 혜능에게 의발을 주면서 "너까지만 받고 다시는 전하지 말아라" 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정법 천년까지 법이 전해지는 방식은 구전심수로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것이다.
상법 천년은 '경전주해' 위주로 불법을 전하는 시기를 말한다. 경전 결집을 통해 팔만사천의 무량법문을 경전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주를 달고 해석하고 법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말법 천년 시대는 매불자생(賣佛資生) 시대로 부처를 팔아 생활의 도구로 삼는 시기를 말한다.

전국 유명 사찰들을 구경하려면 입장료를 내야하고 초파일 같은 큰 행사에는 절집 일년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날이라고도 한다. 그 외 작은 불교 종단들은 기복적인 신앙 토대위에 수행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부처를 팔아 생활 수단으로 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當知하라 是人은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에 而種善根이라 已於無量千萬佛所에 種諸善根하야 聞是章句하고 乃至一念生淨信者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서너 다섯 부처에만 선근을 심었을 뿐 아니라 이미 무량 천만 부처님 처소에 선근을 심어 이 글귀를 듣고 내지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낸 사람이니라.

여기에서 부처는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덕행과 선업을 쌓은 보살들을 말한다.
어떤 그 사람이 무량 천만 부처에게 선근을 심었다고 했는데 그 지은 내역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일심공양으로 오롯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며, 둘째는 일체중생 불가살생이다.
악행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살생이다. 나도 수의학과를 다니다가 도축장에 실습 가서 가축 도축하는 것을 보고 내가 선택한 길을 접은 적이 있다.

세째는 일체중생 생자비심으로 잘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며, 잘못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슬퍼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심이 있어 그러한 것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보살들은 그러한 자비심이 있고 〈금강경〉에서는 자비심을 호념이라고 표현한다.

'종제선근'이라 당하는 곳마다 착한 뿌리를 내렸다고 했듯이 처처불상 사사불공과 같은 뜻이다.
말법시대에 천만 모든 보살들에게 종제선근한 실다운 신심을 낸 사람을 시인(是人)이라 한 것이다.

대종사는 대각 후 〈금강경〉을 보시고 "나의 연원을 석가모니에 정한다"고 하였는데 대종사 같은 분이 바로 시인(是人)이다. 2500년 전 수보리와 대화에서 대종사 같은 분이 나올 것을 미리 예견한 것이다.

가까운 삼례 옆 봉동에 봉서사라는 절이 있는데 대종사 생전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절은 진묵대사가 출가한 절이고 그곳에 진묵대사 부도가 있다.

진묵대사가 생전에 "내 부도가 희어지면 내가 다시 온 줄 알아라"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부도가 희어졌는데 대종사가 확인하러 봉서사에 간 것이다.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원불교는 어떤 회상인가?' 하는 회상관, '대종사는 어떤 분인가?' 하는 스승관이 기저(基底)에 확고하게 서야 한다.

須菩提야 如來- 悉知悉見하나니 是諸衆生이 得如是無量福德이니라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며 無法相하며 亦無非法相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이 한량 없는 복덕을 얻나니라. 어찌한 연고인고 이 모든 중생이 또한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이 없으며 법상도 없으며 또한 법 아닌 상도 없기 때문이니라.

'시제중생'은 말법세에 신심 난 중생을 말하는 것이며, 사상은 물론 법을 얻었고 진리가 있다는 법상과 법을 얻지 않았고 실체가 없다는 비법상까지 없는 사람이다. 비법상에 걸린다는 것은 공(空) 자리에 집착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허무하고 삶에 재미가 없어진다.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若心取相하면 卽爲着我人衆生壽者니 何以故오 若取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며 若取非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이 모든 중생이 만일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할 것이니, 어찌한 연고인고. 만일 법상을 취하여도 곧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며 만일 법 아닌 상을 취하여도 곧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리라.

심취상(心取相)은 육근작용에 대한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고, 취법상(取法相)은 경계에 집착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하려면 심신작용 처리 건을 기재할 때 경계 그 자체에 대해 일어나는 것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재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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