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 순례, 우리 모두가 '영덕'

▲ 원불교환경연대, 에코붓다 등 5개 종단 7개 환경단체로 구성된 종교환경회의가 신규핵발전소로 인해 갈등이 많은 영덕을 찾아 생명평화 순례를 했다.
▲ 이태은 교도 /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뭣이라고? 나 잘 안 들리니까 회관으로 가봐."
유난스럽게 뭉게구름 피워내는 가을하늘을 이고 주렁주렁 사과가 늘어진 담벼락에 기대 햇빛바라기를 하던 할머니에게 뛰어가 서명용지를 들이대니 기어코 마을회관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귀에는 떡하니 보청기가 꽂혀 있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동의 서명서에는 4명의 이름만 올랐을 뿐 빈칸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던 터라 서명짝꿍인 개신교 목사와 부지런히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지난 10월15일~17일까지 원불교환경연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불교환경연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에코붓다, 천도교한울연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등 5개 종단 7개 환경단체로 구성된 종교환경회의는 신규핵발전소를 둘러싸고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는 영덕을 찾았다.

인간의 오만과 욕심으로 인해 고통 받는 자연과 사람들을 찾아 기도순례를 해 온 종교환경회의는 자연과 생명이 파괴되는 올해의 현장으로 '영덕'을 꼽고 '생명평화순례지'로 선택했다.

7번 국도를 따라 줄줄이 이어진 바닷길, 영덕 블루로드 8킬로미터를 걷는 내내 '아, 진심 영덕 오징어를 계속 먹고 싶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천지핵발전소 예정지인 석리마을 앞바다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또다시 내몰리는 몰염치'에 바닷내음마저 죄스러웠다.

한창 오징어를 말리는 손길이 분주한 바닷가 마을 할매들은 하나같이 "그게 와 우리군으로 들어온다 케샀는지 모르것다. 그거 들어오면 바다가 다 절딴 난다카데,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데 우린 다 반대다"라며 서명용지에 이름을 올린다. 깊고 푸른 동해바다에서 물질하던 한 무리의 해녀들에게도 다가가니 "찬성쪽은 복숭아, 쌀, 수박도 주는데 느그는 뭣 안주냐?"고 농을 치고 우린 주머니를 뒤져 나온 초콜릿을 뇌물(?)로 건네며 와르르 웃어댄다.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풍경이다.

한수원, 영덕에 4번째 도전장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명박 정권은 '위기는 기회'라며 지난 2012년 영덕과 삼척을 신규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다.

삼척은 2014년 10월9일 주민투표에서 68%의 투표율과 85%의 반대로 신규핵발전소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고,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시장과 시의원을 배출했다. 지난 10월9일 주민투표 1주년이 되는 날 삼척시민 1만명이 모여 다시 한 번 핵발전소 반대 함성을 높였다.

지난 6월에 발표한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정부는 영덕 천지핵발전소외에 신규핵발전소 2기에 대해서는 삼척이라고 못박아 발표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덕에는 천지원전1·2호기를 2026년과 2027년에 준공하겠다고 밝혔다.

영덕은 80년대부터 3차례나 핵폐기장 부지로 거론되었다. 처음 2차례는 잘 막아냈고 부안이 핵폐기장 반대투쟁으로 무산된 후 2005년 후보지였던 군산, 영덕, 포항, 경주에서 주민투표를 한 결과 중저준위 방폐장이 경주로 결정되면서 3번의 핵폐기장 건설 시도를 잘 막아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상처와 후유증은 컸다. 당시 주민투표 지역에서는 온갖 관권선거, 돈선거가 판을 쳤고 반대의사를 표시했던 주민들은 돈의 위력 앞에 속속 무너졌다.

2015년 또다시 신규핵발전소 건설지역으로 지정고시된 영덕은 11월11일~12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긴장과 갈등이 높아졌다.

영광, 월성, 울진, 고리 지역경제 살아났나

경주월성핵발전소 인근지역인 나아리에 살고 있는 황분희씨(67세)는 주민들과 이주대책위원회를 꾸려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황분희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년 살았던 고향에서 이주를 요구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다. 우리 동네는 한집 걸러 암 환자이다. 집을 팔고 전셋집이라도 얻어보려 하지만 핵발전소 인근마을이라 서 누구도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집 값은 0원이다. 그래서 한수원에 집을 사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들어주지 않는다." 황분희씨 또한 갑상선암 환자이고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황분희씨는 이렇게 답한다. "한수원의 지원금은 전기요금 12,000원 감면 혜택밖에 없다. 지원금은 경주시와 경상북도로 간다. 그런데 한수원으로부터 지원금이 나온다고 경주시 예산은 그만큼 줄어든다.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농산물도 안 팔리고 관광객도 안 온다"

나아리 주민 황분희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핵발전소 주변 마을에는 빈집들이 허물어지고 한때 반짝 성행했던 상가들의 셔텨문은 굳게 닫혔다.

최근 서울대 백도명 교수팀의 연구발표에 의해 '핵발전소 인근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3배이상 높다'는 것이 공식화됐다. 핵발전소 주변 주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고 피해만 늘어난다.

'우리'가 '영덕'이다.

영덕핵발전소 건설 여부는 이제 영덕주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그린피스가 얼마전 내놓은 자료(2016년말 기준)에 의하면 세계 최대핵발전소 단지 베스트5 중 한국이 1, 3, 4위를 차지했다.

부산고리 8기(8,260MW), 울진한울 6기(6,216MW), 영광한빛 6기(6,193MW)의 핵발전소가 운행되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된다. 10월29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불량부품, 시험성적서위조, 공사중 노동자사고 등의 문제로 연기됐던 신고리3호기 운행허가를 내주었다. 대한민국의 핵발전소는 25기가 되었다. 핵발전소 세계 4위, 밀집도 세계1위이다.

영덕 신규핵발전소는 한국 탈핵과 에너지전환운동의 운명과 함께 서있다.

11월11일 영덕 주민투표를 앞두고 공권력과 돈을 앞세운 유치운동이 본격화됐다. '주민투표'는 불법이고 핵발전은 '국가사무'이므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주민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전단지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11월1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영덕군민의 86.7%가 주민투표에 대해 알고 있고, 71.9%가 주민투표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주민투표 적극 참여의사를 보인 주민 중 72.8%가 핵발전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암에 걸리는 것도 주민이고, 농수축산물 판로가 막히는 것, 관광객이 줄어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것도 주민이다. 올여름 한국의 전기는 남아돌았다. 인구감소, 제조업의 축소 등으로 전기사용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계는 재생에너지 시장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세계전력의 23%를 태양, 바람, 지열 등의 자연에너지로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 모두 '영덕'이 되어 법신불 사은전에 기도하자. 초록지구에서 영생을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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