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심법 몸소 보여준
선진에 대한 존경 잊은적 없어
10월2일, 장정일 교무의 열반 소식을 들었다. 나와의 첫 만남은 30년 전의 일이다.
1985년 당시 나는 군대를 마치고 출가서원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해 5월 어느 날 원광대학교병원 보급계에서 일하는 교무를 도와주고 있다가 관리과장으로 온 장 교무를 알게 됐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장 교무의 특이한 점은 직원이 오면 반드시 집무책상에서 일어나 소파로 옮겨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결재를 하는 모습이었다.'아! 과장인데도 직원과 평등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대해주는구나.'출가를 서원한 나에게 있어 그 장면은 '평등'과 '배려'라는 가르침으로 깊이 새겨졌다.
그 후 20년이 지난 2006년, 나는 지금의 사회복지기관 사무국장으로 부임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결재라는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나는 책상 바로 앞에 원형 탁자 하나를 두고서 직원이 오면 그 자리로 옮겨 함께 마주하며 결재를 했다.
장 교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재현한 것이었지만 30여 명의 직원을 그렇게 대한다는 것은 단순히 '평등'과 '배려'를 흉내 낸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이었고 의견을 존중하는 진정성이 있어야만 했다.
4년 후 관장으로 승진되어 장 교무와 같은 나이와 위치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이해하고 힘을 갖추게 됐다. 그것은 필시 윗사람이라는 상을 내려놓고 아랫사람을 향한 따듯한 자비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2013년 장 교무와 우연히 두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가족의 재활치료를 위해 우리 기관을 방문했다. "아니~ 교무님, 여기에 어쩐 일로 왔습니까?" 너무도 뜻밖의 만남에 원광대학병원 관리과장으로 있을 때의 큰 가르침을 여기서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 자네가 눈썰미가 있구먼." 그야말로 '이심전심'을 확인한 법열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장 교무는 "나는 원광대학교에서 직원들이 일 잘하도록 알려주는 것이 교단 발전을 위한 나의 사명으로 알았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일을 잘하는 사람, 조금만 알려주면 되는 사람이 있었지. 하지만 처음부터 자세히 잘 알려줘야 하는 사람도 있어"라며 정년퇴임을 하고 난 뒤 자애와 위엄이 담긴 호상(虎相)같은 인상을 풍겼다.
나는 총부 향적당에서 세 번째 만남이자 이생에서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특별한 사제지간도 아니고, 원광대에서의 가까운 인연도 아니었지만 교단의 한 선진을 향해 올리는 향 내음이 내 가슴속에 깊이 스며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현실의 세계는 인과의 법칙에 따른 모든 차별 현상으로 나타나 있으나, 그 근본은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가 있음을 알아서 그러한 심법을 사용하도록 몸소 보여준 선진에 대한 존경이었다.
흔히 일터에서 교무라는 아상과 윗사람이라는 수자상을 가지고 일을 하다보면 내 주견은 강해지고 남의 의견을 멀리하기 쉽다. 또한 사회복지 현장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직접 교화의 장'이라는 신념 하나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더할 필요가 없다. 이용자 한 사람, 직원 한 사람들이 다 다른 능력을 가진 차이를 보이지만 다 같이 존중받아야 할 부처임은 틀림없다.
존중한다는 것은 평등의 진리를 실현하는 일이요, 근기에 따라 대하는 세심한 배려는 곧 자비의 실천이다. 특히 평등의 견지에서 격려와 위로, 칭찬과 인정을 건네는 한마디의 힘은 실지불공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장 교무와의 만남으로 나는 무상대도의 전법은 언제 어디서고 깨닫고 실천하는 자로 하여금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종사가 부촉한 '법을 후세에 전한다는 것이 글과 말로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나,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후세에 법통이 끊이지 않게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는 법문이 더욱 새겨진다.
이군도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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