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개벽의 주세성자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대원정각을 한후 제생의세(濟生醫世)를 위해 일원대도 회상을 창립하면서 최초로 9인제자를 모아 교화를 시작했다. 전남 영광 길룡리에서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기도를 마친후 부안 변산에 들어가 제법(制法)을 한후 원기9년(1924) 전북 익산 신룡리에 중앙총부를 마련, 전법(轉法) 교화를 단행한다.

소태산의 최초 구인제자는 모두 남자들로 구성했으나, 일찍이 남녀평등을 주창한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17년(1932) 초판된 〈보경 육대요령〉에서 사요(四要)의 첫 조항으로 남녀권리동일을 제시했다. 이 남녀권리동일은 교리 변천과정에서 자력양성으로 개칭되나 그 내용의 대체는 동일하다.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단조직에 있어서 여자수위단 창단이 누차 거론됐다. 원기16년에 발행된 〈불법연구회 통치조단규약〉에도 '본단의 목적을 총감하기로 정수위단이라 명칭하고 남자로 1단, 여자로 1단을 조직하여 모든 단의 원시(元始)가 되기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대종사는 원기16년 3월에 여자수위단 시보단(試補團)을 조직 구상한 바 있고, 원기28년 4월 정식조직 및 대리 내정된 여자수위단 시보단이 그것이다. 대종사 당대에 두차례나 여자 수위단 제도를 실현하고자 시보단을 구상한 바 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원기30년(1945) 1월25일에 정산 송규 종법사에 의해 여자 수위단이 정식으로 공개됐다.

여자 수위단은 일타원 박사시화, 이타원 장적조, 삼타원 최도화, 사타원 이원화, 오타원 이청춘, 육타원 이동진화, 칠타원 정세월, 팔타원 황정신행, 구타원 이공주 등 아홉사람이다. 원기16년 여자수위단 시보단에는 사타원 이원화와 팔타원 황정신행 자리에 십타원 양하운과 성타원 전삼삼이 들어 있었다. 교단에서 여자에게 법호를 주기 시작한 것은 대종사 열반 후인 원기30년 1월25일 이었으나, 수위단원을 비롯한 몇몇 여성제자들에 대한 법호 내정은 대종사 재세시에 이뤄졌다. 원기28년, 정식으로 여자정수위단이 조직될 때에 입단한 9인단원의 법호가 일타원부터 구타원까지인 만큼, 이 아홉사람을 원불교 초기교단에 있어서 대종사의 중요 여성 9인제자로 파악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여성 9인제자의 구성을 살펴보면, 일타원 박사시화는 서울사람이요, 이타원 장적조는 부산사람이며, 삼타원 최도화는 전북 진안사람으로 이상 3인은 '초기교단의 3대여걸' 로 불렸다. 사타원 이원화는 영광사람으로 대종사의 최초 여성제자이자 교단의 첫 여성 전무출신이며, 오타원 이청춘은 전주사람으로 익산 총부 건설에 동참했다. 육타원 이동진화, 팔타원 황정신행, 구타원 이공주 등 3인은 서울사람들로서 상당한 재산과 학식을 겸비한 귀부인들로 새 회상 창업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칠타원 정세월은 전북 김제 사람으로 불법연구회 초대회장을 지낸 추산 서중안의 부인이다.

이상 여성 구인제자의 공통점은 모두 기혼자라는 점이다. 결혼 않고 독신으로서 교단에 헌신하는 정녀(貞女)는 원기12년에 출가한 공타원 조전권에 의해 비롯된다. 여성 구인제자를 재가출가로 구분해보면, 일타원 박사시화, 이타원 장적조, 사타원 이원화, 오타원 이청춘, 육타원 이동진화, 칠타원 정세월, 구타원 이공주 등 7인은 출가요, 삼타원 최도화, 팔타원 황정신행 2인은 재가이다. <원불교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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