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뜻은
깊은 마음공부와 적공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반도의 민족적 종교들은 모두 식민과 봉건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시대의 여망 속에서 탄생했다. 그 여망을 상징하는 언술이 바로 '개벽'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말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는 '사람의 변화'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탐진치(貪瞋癡)로 혼탁한 상태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리는 없기 때문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말도 결국 물질의 개벽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공부와 적공(積功)'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천도교에서는 개벽을 정신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의 3대개벽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제도와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3대 개벽의 가장 앞자리에 인간 개성의 정신개벽을 앞세우는 것도 역시 마음공부와 적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 시대 한반도의 개벽이 '통일 이후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것은 진정한 해방과 종전(終戰), 그리고 이산(離散)의 종식 없이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물질의 개벽이자, 민족개벽과 사회개벽의 큰 전환을 의미한다.

물질의 개벽에는 적공이 필요하듯이, 한반도 통일이라는 큰 전환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공덕이 두루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이라는 개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공영하겠다는 것을 구체적인 행동과 제도 등을 통해 구체화하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는 남과 북 사이에 나름의 약속들이 축적되어 있기도 하다. 7.4공동성명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최근의 8.25합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남북의 합의들은 남북이 상호 인정과 공존을 위해 각기 자기중심의 국가주의를 '규율'하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지닌다. 남북이 각각 국가주의를 규율한다는 것은 결국 분단체제 아래 상대를 적대하는 쪽으로만 과대성장한 안보국가를 규율한다는 것이고, 이는 안보국가의 통제와 시민국가의 확장으로 가능해진다. 그래서 이 '규율'에는 체제통일이나 비합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남과 북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군사적 측면만 보자면, 북의 핵무기와 미사일, 한국과 미국의 핵 확장억지와 이른바 '참수(斬首)작전'을 포함하는 공세적 작전계획 등이 모두 존재 자체가 상대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결국 개벽으로서의 한반도통일은 분단체제 아래 과대성장한 안보국가를 정상적인 시민국가로 변화시키려는 '지난한 적공' 위에 비로소 성립하게 된다. 남북 사이의 '접촉과 협력'의 확대라는 기본 적공은 한반도통일이라는 개벽을 향한 '지난한 적공'의 첫 걸음일 뿐이다.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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