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이 난 인생, 그래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

▲ 탑골미술관에 전시 중인 어르신들의 서예전은 굽이친 인생살이의 굴곡을 느낄 수 있었다.

▲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사진)과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많은 어르신들이 출근 도장을 찍는 곳으로 소문이 난 '서울노인복지센터'. 센터는 탑골공원과 도보로 10분이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더 자주 찾고, 센터에서 진행되는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된다.

3일 2015 탑골대동제 '너나들이'가 시작됐다. '너나들이'는 서로 너, 나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12월4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는 탑골대동제는 센터 동아리와 수업반 어르신들이 1년간 열심히 배우고 노력한 열정이 담긴 어르신들의 축제이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 열린 놀이터가 열린 셈이다.

일심 집중이 절로 되는 붓글씨

4일 탑골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서예전을 관람했다. 70년 이상 인생살이의 굽이치는 순역 경계의 파도가 고스란히 붓글씨에 녹아든 흔적이 가득했다.

'이별이 불이 되니 간장이 타노메라/ 눈물이 비되니 끌듯도 하건마는/ 한숨이 바람이 되니 끌똥 말똥하여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작가 미상의 글을 이암이 쓴 작품이다. 인생의 동반자를 여의고 홀로 노년을 지내는 어르신의 깊은 고독을 대변해 주는 듯해 한동안 작품을 감상했다.

도연명의 사시(四時)를 한자로 멋지게 옮겨 적은 글 앞에 섰을 때, 한 어르신이 다가왔다. 다양한 글씨체가 어우러진 글이라 읽기가 어려웠는데 어르신은 단숨에 읽어 내리며 해석까지 막힘이 없다.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夏雲多奇峰(하운다기봉)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봄철의 물은 사방 못에 가득차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를 많이 돋보이게 하네/ 가을 달 드높이 휘영청 밝게 비추고/ 겨울 고갯마루에 빼어난 자태의 외로운 소나무 한그루'

원천 조동선 낙관이 찍혔다. 어르신은 "초서와 행서, 해서, 추사체까지 곁들여 썼다"며 "똑같은 글씨는 좀 재미가 떨어져서 이렇게 해 봤다"고 소개했다.

올해 77세인 어르신은 "붓을 잡은 몸이 좋지 않아서 '이제는 수양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며 붓글씨를 쓰게 된 동기를 풀어냈다. 위 절제수술을 5번이나 한 그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다들 죽는다고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서울에 사는 고모님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일단 올려 보내면 좋겠다고 해서 고향 곡성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구로동으로 이사를 왔다. 아내와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는 심정이었다"고 인생 역정을 밝혔다. 아내의 지극한 정성에 차츰 호전된 그를 동네 사람들이 '통장'으로 추천했다. 통장을 하게 되니 동사무소에서는 새마을 지도자와 정화위원 등 각종 크고 작은 감투를 다 씌워줬다. 바쁜 일정에 부동산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부동산업을 청산하고 모든 업무를 놓고 붓글씨를 쓰게 된 것이다.

그는 "수양 삼아 글씨를 배운 것은 4~5년이 됐다. 그러다 선생이 인천으로 이사를 가서 홀로 집에서 독학했다. 서예실이 필요해 옥상에 작은 컨테이너를 놓았다. 그랬더니 동사무소에서 당장 달려와 불법이다고 했지만 워낙 작은 공간이라 그냥 사용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집에서 붓글씨를 쓰면서 수양을 한 것이다. 옥상에 고추, 상추 등을 심고 가꾸는 것이 건강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점차 몸이 회복되면서 복지관에 나와 서예를 4년 정도했다. 위가 없는 그가 건강을 회복한 것은 아마도 '통장'의 임무를 맡아 열심히 공익을 위해 활동하게 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봤다.

그는 "붓글씨도 쉽지는 않다. 정신을 온통 붓 끝에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이 써지질 않는다"며 "일심공부가 절로 되고 붓 끝에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져갔다. 독학을 하며 서예대전에도 출품해 대상을 타기도 했다. 현재 2곳에 작가 등록은 됐지만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그의 호는 원천(元川)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고향이 산동네인데, 우리 동네 물이 내려가서 섬진강이 된다. 섬진강의 원천수가 되기에 호를 그렇게 명명했다"고 밝혔다. 마음대로 호를 짓고, 마음대로 도연명의 사시를 응용할 수 있는 경지다. 한마디로 이제는 걸리고 막힘없이 어르신 마음대로 할 힘이 생긴 것이다.

▲ 탑골공원의 신씨대감은 3천번은 불러야 능이 난다며 자작곡한 노래를 불러보고 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탑골 '신씨대감'

서예 관람을 마치고 센터를 나오다가 범상치 않은 어르신을 또 만났다. 검은 정자관을 쓰고 한복을 차려입고 담뱃대를 들고 다니는 신지우(83) 어르신.

그는 "비가 오지 않으니 비 좀 오라고 날구지를 하는 중이다"며 "이렇게 하고 다닌 지 10년이 넘는다. 2주 정도에 한 번씩은 이 차림을 한다"고 말했다. 갓에는 고담(古談)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옛날의 좋은 말씀들을 원고로 옮기고 있다. 객담, 미담 등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소설책은 아직 출판하지 않았다"고 한다.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만든 노래를 늘 듣고 다니고 있다"며 들어보라고 한복 주머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작사, 작곡, 노래 모두 본인이 직접한 것이다. 반주만 녹음실에 가서 하고, 그 반주에 맞춰 녹음기에 대고 직접 노래를 해 평상시에 듣고 다닌다.

그는 "가수가 무대에 올라 노래하려면 3천 번은 불러봐야 능이 나서 실수하지 않아. 2천번 연습하고 올라가면 실수를 하지. 가수가 일평생 공부하고 노래해도 출세 못하는 사람 태반이지. 나도 마찬가지여"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짓는 노랫말은 사실에 바탕해 조금 더 미화시켜 아름다운 말과 글로 가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노래는 도대체 노랫말이 예술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 "탑골공원에서 수집한 이야기(고담)가 120개 정도 있는데, 내 일생에 한권은 꼭 소설로 책을 내려고 한다. 3~4년이면 완성이 될 것 같아. 건강을 유지하면서 허준의 〈동의보감〉처럼 〈탑골공원 고담〉을 꼭 내겠다"고 힘줘 말했다.

30여분 이야기를 나눈 그가 짐을 정리했다. 이제 탑골공원으로 가서 한바퀴 돌고, 종묘 공원에 들러 오후 6시에 성산동 집으로 돌아간다는 일정이다.

저마다 삶의 무게에 맞는 이야기 보따리가 가슴에 가득한 어르신들. 가을이 익어가는 만큼 삼삼오오 탑골공원에서도 어르신들의 인생 드라마가 이야기꽃으로 펼쳐진다. '아, 내가 왕년에는 이런 대단한 사람이었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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