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불법이란 것은 곧 불법이 아닐지니

7장에서는 무위를 너무 강조했는데 그것으로 끝나면 무위에 떨어진다. 선행은 유위(有爲)인데 그 자체로 가치있다는 것을 8장에서 밝혔다.
이 세상은 유위의 도덕적 행위인 선행을 해야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그 선행이 무념 무아의 무위에 바탕 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살행이며 대종사는 무아봉공으로 보였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하면 是人의 所得福德이 寧爲多不아.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만일 어떠한 사람이 있어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에 쓰면 이 사람의 얻는바 복덕이 정녕코 많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겠느냐?

여기에서 '삼천대천세계'는 인도인의 우주관이다. 중국인들은 소박하게 천지, 즉 음양의 하늘과 땅만을 생각하는데 인도인의 우주관은 오늘날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관과 비슷하다.

삼천대천세계를 설명하자면 수미산이 가운데 있고 그 주위에 사대주가 있다. 그 주변에 아홉 개의 산이 있고 여덟 개의 바다가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수미세계이다.

수미산이란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을 말한다. 이런 수미세계를 1,000개 모은 것을 소천(小千)세계라고 하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세계가 중천(中千)세계이며, 이 중천세계를 천개 모은 세계가 대천세계(大千世界)이다. 이 대천세계는 소·중·대의 3종의 천세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삼천대천세계'라 부른다. 대천세계는 수미세계의 1,000의 3승으로 10억 개의 수미세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부처님의 교화 범위가 되는 것이다.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 보시를 한다고 하였다. 칠보는 일곱 가지 보물로 금·은·진주·마노(화산암 빈 공간에 생기는 보석)·거거(산호초에 붙어사는 바닷조개)·유리·매괴(수정의 일종)를 말한다. 당시로써는 진귀한 보석들이며 '이러한 것으로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많음이 있느냐? 없느냐?'하고 부처님께서 물은 것이다.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是福德은 卽非福德性일새 是故로 如來說福德多니이다.
심히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이 복덕은 곧 복덕성이 아닐새 이런 고로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설하셨나이다.

복덕이란 도덕적으로 보시하는 것을 말하고, 복덕성은 마음의 근원자리로 복덕을 짓는 근본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복덕은 유루복이고 유위이며 복덕성은 무루복이고 무위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삼천대천세계의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말고 더욱더 공부해서 복덕성 자리로 올라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 설하신 것이다.

복덕성 자리는 무아 자리이다. 그 무아의 자리에서 삼천대천세계의 가득찬 칠보로 보시를 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수보리 가로되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있어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귀게등을 받아 가져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여 주면 그 복덕이 저 복덕보다 승합니다."

수지(受持)란 수지독송의 준말로 경을 받아 지키고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사구게는 5장에서 배운 '범소유상 개시허망'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에 나오는 모든 사구게 중에서 자기 귀에 들어오는 구절을 생각하면 된다. 그 이유는 육조대사의 발심한 동기가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들음으로써 시작되었음을 상기하면 된다. 아는 글귀라도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평소 의두성리 연마를 오래오래 한사람은 그 대목을 어디에서 들으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대화도 잘 되지만은 그렇지 않은 대목은 더디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구게를 수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면 삼천대천세계 만큼의 칠보로 보시하는 복덕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다. 육바라밀의 첫째가 보시바라밀이며 보시 중에 타인설 보시가 최고의 보시라 할 수 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一切諸佛과 及諸佛의 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이 皆從此經出이니라 須菩提야 所謂佛法者는 卽非佛法이니라
어찌한 연고인고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다 이 경으로 좇아 나오는 까닭이니라.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란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모든 부처의 무상정득정편지의 법이 다 이 〈금강경〉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대승불교는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 마지막이 지혜바라밀이며 이것이 복덕성이다. 즉비불법이라 한 것은 불법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번뇌 즉 보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원불교에서는 그 어떤 것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요 수행적으로 무시선 무처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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