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명하게 그 행복에 다가가고, 어떤 사람들은 막연히 바라기만 하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본인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행복해지는 쪽으로 맞춰가며 살아갈 필요가 있죠.

생각해보면, 행복은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이 순간에 주어진 행복을 느끼고 누리는데는 미숙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한 불만족에는 익숙합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가 채워지거나 변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상태로 살아가기가 쉽죠. 그래서 늘 밖으로부터 뭔가를 구하고, 얻고, 채우려고 합니다.

갈구죠. 애타게 찾는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놀 곳, 만날 사람, 갖고 싶은 물건, 듣고 싶은 찬사, 받고싶은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하며 밖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구하려하죠.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고, 무언가를 성취하여 잠시 잠시 행복을 느끼죠. 하지만 이렇게 구하는 행복은 설사 잠간씩 맛볼 수 있을지 몰라도, 돌아서면 곧바로 공허감이 밀려오며 또 다른 갈구가 생기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행복은 구하면 구할수록 오히려 고통만 가중됩니다. 세상이 큰 만큼 욕구도 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는 주변 환경과 다른 사람 마음을 변화시켜 본인의 행복을 찾는 경우입니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이렇게만 해준다면' '이렇게 되어야' '저렇게 되어야' 등등. 세상을 본인의 뜻에 맞춰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맘대로 굴러가지 않는 세상과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타인을 향해 화를 내고 서운해하면서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실은 시작부터 잘못된 추구죠. 자기 마음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서 세상과 타인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고 하려 하고, 받으려고만 하는 발상 자체가 모든 불행의 출발점이 되는 겁니다.

시람 사람이 자기만 위해달라 하고, 받으려고만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배고픈 귀신이 따로 없죠. 받으려고만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아귀입니다. 사람의 탈을 쓴 배고픈 귀신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성현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발상 자체를 바꾸라고 합니다. '널리 대중에게 이익주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행복을 삼으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나만의 행복'을 쫓다보면 욕구는 끝이 없고, 세상은 자기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기에 행복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생각을 바꿔서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줄 수 있는 방법을, '나만을 위한 행복' 뿐 아니라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다보면 훨씬 더 행복에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위하고 대중에게 은혜를 주는 사람을 칭송하고, 흠모하고, 따르고 닮아가는 사회. 스스로의 행복 뿐 아니라 세상이 함께 행복한 길을 찾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배가 시킬 뿐 아니라 세상 전체의 행복을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행복의 길이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그 행복을 나눠가질 수 있을까요? 행복하지 않습니까? 너무 자신의 행복에만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열어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방법을 찾아보세요. 벌써 가슴이 설레고 행복이 다가오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밴쿠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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