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과 협력의 확대'라는 적공을 통해 결국 어떤 남북관계를 주도할 것인가? 이는 개벽으로서의 한반도 통일문제를 이해하는 핵심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원칙적 대답은 6.15공동선언이나 10.4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6.15공동선언에서는 통일의 방안으로 '연합제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연합제란 곧 '남북연합'을 말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통일대박론 혹은 '2지역체제론'은 물론이고, 공식통일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나 심지어는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 등 대부분의 통일론에서 말하는 남북연합 혹은 2지역체제는 완전통일, 즉 사실상의 단일국가=체제통일로 가는 과정의 과도적 단계를 의미한다. 남북연합을 과도적 단계로 규정하는 것은 단일국민국가 건설만을 '완전한 통일'로 본다는 것이고, 이는 현재와 같은 남북 비대칭 상황에서는 결국 남이 북을 흡수하겠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물리적 힘을 동원하지 않는 한 남과 북이 하나의 체제로 통일하는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단일국민 국가의 수립만 통일로 보는 것은 통일에 대한 비전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으며, 국민 일반의 통일회의론 혹은 통일공포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남북연합을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복합국가'로 볼 경우, 이는 '사실상의 통일'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물질의 개벽'이 시작되는 한 징표가 바로 '남북연합'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남북연합이 교류협력의 발전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spillover)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의식적 추구와 별도의 적공 없이는 교류협력도, 평화체제도, 핵문제 해결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남한이라는 존재 자체가 북한에 위협이 되고 있는 현실 하에서는, 아무리 남북관계의 호시절 상황이라 하더라도 당국관계는 물론 민간의 교류도 숱한 굴곡과 단절의 반복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교류협력의 축적이 자동적으로 남북연합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이러한 조건에서는 남북이 각기 상대를 위협하는 자신의 국가주의를 통제하는 약속, 즉 남북연합에 대한 합의가 없이는 교류협력의 진전도 군사적 신뢰 구축도 본격화되기는 어렵게 된다.

이는 결국 경제적 교류와 협력, 한반도 평화, 북핵문제 등 모든 한반도문제 해법들이 '남북연합'이라는 통일론이 매개되어야 비로소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평화를 중심으로 한 접근은 매우 중요하지만, 핵실험과 로켓 발사, 때로는 연평도 포격 같은 사태에서처럼 북한이 평화를 위협하는 인자로서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남쪽만이라도 평화를 강조하자고 말하는 것이 자칫 공허한 얘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위기가 심화될수록 남북연합이 강조돼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민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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