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35

▲ 나성제 교무 / 우인훈련원
대종사가 사은의 은혜를 밝혀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타력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 타력을 끌어올 수 있는 힘이 곧 자력이다. 때문에 자타력병진이라는 원만한 신앙법을 밝혀준 것이다.

삼학병진이라는 완전한 수행법으로 완전한 자력을 얻었다면 온 우주와 사은의 위력을 얻어 올 수 있는 힘을 가진 셈이다.

우리의 서원은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것이다. 곧 완전한 자타력을 온전하게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하려면 천하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원래 무의미한 존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애송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무량한 시공 속에서 전체가 하나로 연계되어 있어서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미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본능이고 속성이다. 때문에 자기를 알아주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또한 곳곳이 다 부처님이니 일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불공해야 하는 이유이다.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많지만 형형색색 모양도 다르고 마음도 다르다.

하나하나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주고 살려주는 불보살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인 마음으로 묵살시켜 버리는 범부중생도 꽤 많다.

흔히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꼴 봐주는 공부가 아주 큰 공부라고. 이해관계로 상대적인 것은 다 배척하고, 관계없는 것은 무시해버리면 역시 다른 사람들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날마다 진리를 만나고 진리를 배운다. 진리는 오늘도 내일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바람도 불게 하고 비도 내려서 산천초목이 겨울을 잘 견딜 수 있게 돕고 있다. 그것처럼 진리를 닮은 사람들은 일년 내내 공들였던 수확을 걷어서 하나하나 저장하며 뿌듯해 하고 행복해 한다.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이 있는가. 그러나 묘하게도 마음이 열린 만큼만 보이고 자력이 있는 만큼만 갖다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죽어 있으면 죽은 나무와 같다. 주위에서 아무리 살려주려고 다북찬 기운으로 맴돌고 있는데 활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진리는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다 주려고 손을 내밀고 있지만 스스로 자력이 없어서 가져올 수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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