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나는 기념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한 전시도 별로이지만, 거대한 열주에, 대칭에, 권위적인 공간이어서 더 끌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산에는 권위적이지도 않고, 전시가 아닌 공간 자체로 순국선열을 느낄 수 있는 좀 다른 기념관이 하나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다.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 임영환은, 순국선열을 모신 기념관인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특히 건물을 12개의 군락으로 나누고, 건물의 입구도 아래로 낮춰서 권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기념관 앞에 서면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4개의 건물로 보이지만, 옆으로 돌아가면 4개가 아니라 12개의 같은 크기의 매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2개의 건물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손가락을 끊어서 의지를 모았던 12명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표현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왼손 넷째 손가락(무명지)를 잘라, 혈서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 쓰고 독립운동을 결의한 것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 결의에는 안중근 의사를 포함해서 항일투사 12명 같이 참여했다. 3년 이내에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나라를 판 이완용 등 매국노를 암살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하겠다는 의미로 12명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맹세했다. 이들이 손가락을 같이 자르고 맹세했다 하여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줄여서 '단지동맹(斷指同盟)'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열한명의 순국선열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자신 외에 단지동맹 가담자가 11명이 더 있다는 말은 했지만,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 지금까지도 단지동맹의 나머지 구성원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 한 분을 신격화하기보다는, 단지동맹의 정신을 담아내고자 한다. 또한 건축가는 건물에 안중근 의사보다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담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반투명한 U-glass를 사용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아주 가볍게 땅에 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나, 밤에는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12개의 불기둥처럼 느껴지는 것 모두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12개 건물의 높이와 볼륨을 결정한 이유도 참 인상적이다. 건축가는 이 땅에서 파 낸 흙만큼 건물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신사가 있던 땅의 기억을 안중근 의사의 정신으로 승화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에서 장소를 존중한 것이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동선도 참 색다르다. 보통 기념관이라고 하면 거창한 전면 입구를 통해 들어갈 텐데,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건물을 빙 둘러 돌아가게 한다. 왼쪽에 건물을 두고, 긴 경사로를 타고 조금씩 걸어 내려가면, 오른쪽의 검은색 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주변 소음을 차단해주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물이 흐르는 벽에는 안중근 의사가 생전에 쓴 글들이 가득하게 새겨져 있다. 보물 569호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등 글을 하나하나 읽어 가면,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순국선열이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간 고마운 어르신을 알아가게 된다. 이렇게 안중근의사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가득하다.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