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활동의 보람

▲ 장주형 원무 / 어양교당
김제 시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까까머리 학생이 원불교의 전법성지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3년간 다녔지만 원불교를 소개받거나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졸업 후에는 대학 입학과 직장생활로 전주, 군산, 서울, 남원 등지에서 검찰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원기86년부터 현재까지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무사로 활동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 당시 부안교당 김인경 교무의 연원으로 입교를 했다. 지금은 어양교당 교도로 활동하고 있지만 나의 고교 동창생 중 3명이 출가하여 교무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원불교를 좀 더 빨리 만나지 못했던 게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전북에서는 42세의 최연소 나이로 법무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원불교를 늦게 만난 만큼 죽어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않으려면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성심을 다했더니 중앙도 거치지 않고 교당생활 3년 만에 단장이 됐다. 동시에 어양교당 독경단 중앙까지 겸직하게 됐다. 현재는 독경단장, 남자 13단장, 상2단장, 교도부회장, 청운회 감사 등 여러 직책을 맡고 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교무의 지도에 순종하고 힘 미치는 대로 공사에 최선을 다할 뿐 다른 번다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독경단 총무는 독경단 단원 및 일반 교도들에게 열반 소식과 각종 독경의식 관련 일정을 알리고, 열반에서 종재에 이르기까지 독경에 필요한 법요도구와 독경단 법복을 챙겨 열반인의 천도 독경이 잘 이뤄지도록 돕는다. 독경단원은 친불친을 떠나 상없이 독경에 참여함으로써 교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번은 독경단 단원 중에 어머니의 열반을 맞게 된 교도가 있었다. 친불친을 떠나 모든 열반인에 대한 천도 독경에 정성을 다하고 있지만 특별히 마음먹기를 "그동안 수많은 교도들의 열반 독경에 참여해준 단원의 어머니가 열반했으니 더욱 정성을 다해 독경을 해야겠구나" 하고 일심을 다해 독경해 주었더니 그 정성이 전달되었나 보다. 그 교도와 나는 지금도 남다른 정을 주고받는 법동지가 됐다. 그때 나는 "아하! 독경이라는 의식이 교화의 한 방편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이구나" 하고 교훈을 얻게 됐다.

법무사가 행하는 업무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발생하는 각종 생활법률 상담과 등기업무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법원과 검찰의 수사와 관련된 업무를 대행하거나 상담해 최선의 취사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도 사회생활 하는 중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분쟁에 휘말리게 되면 안절부절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접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오직 공심으로만 생활하는 전무출신들이 각종 일을 당하여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청춘을 이 교단에 바치고 오직 공심으로 살아가는 교무들도 있는데 그동안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이 교단에 합력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법조인 교화와 어양교당 교화보조에 서원을 세우게 됐다. 현재 어양교당 교화를 맡고 있는 정원아 교무는 나에게 원무를 추천해 주었고 원기99년 드디어 원무사령을 받았다.

다소 늦긴 했지만 그래도 원기100년 안에 원불교 교도가 됐으니, 대종사의 수첩에 내 법명이 적혀 있었던 것은 맞나 보다. 다만 좀 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에게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한 다음 유용하게 쓰려고 수첩 한쪽 모서리에 적어 놓았나 보다. 때문에 원기99년에 재가교역자인 원무로서 나를 부른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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