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담현 교도
새로운 100년 교정원 서울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업추진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당신이 어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자를 선정하려고 한다고 하자. 이때 2명의 후보자가 찾아왔다.

첫 번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의 친척(혹은 지인)입니다. 그리고 현재 '***'교당에 다니고 있는 교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순한 인상에 부드러운 말씨까지 지니고 있고, 그 태도도 공손하다.

그다음 두 번째 사람, "안녕하세요, 저는 ***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사업과 관련하여 8년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업을 수행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소개서에 나와 있고, 사업계획서는 첨부하니 검토바랍니다. 계약서 초안도 보냈습니다. 계약금은 계약체결 후 5일 이내에 입금해 줘야 합니다."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비즈니스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당신은 위 두 사람 중 누구를 사업파트너로 선택하겠는가. 변호사인 나에게 물어본다면 두 번째 사람을 선택하라고 권할 것이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사람의 경우 분명한 계약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약관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그 피해 또한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의 경우 모든 것이 모호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주고 사업을 맡긴 사람이 모든 것을 떠맡아야 할 수도 있다. 설령 상대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책임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계약서나 입증서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법정소송에 간다고 해도 승소를 장담할 수가 없다.

어찌보면 상식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의외로 첫 번째 사람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교단도 예외는 아니다. 변호사로서 교단 내외의 이런저런 사안에 대하여 법률상담을 하다보면 상담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계약서나 입증서류는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을 믿고 맡겼는데 그럴 줄 몰랐다는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있어 아쉬울 때가 있다.

사람 사이에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정서는 옳은 것이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순수한 믿음은 각박한 우리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해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신뢰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경우 피해는 결국 그러한 순수한 신뢰를 부여한 자가 부담하게 된다. 만일 신뢰를 부여한 자가 교단내 공적인 위치에 있는 경우라면 이는 교단 자체의 책임이며, 외부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 교단이 사적인 네트워크에 의존하여 공적인 업무를 그르친 것이 된다.

서울에서 교단의 업무가 새롭게 진행될 때 우리는 교도가 아닌 이들과 새로이 접촉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이 때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누군가를 통해 확인을 하고 싶고 그 도움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전적으로 그러한 네트워크에 의존하려는 태도가 발생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소개를 받은 사람이 실제 그 업무를 같이 잘 해나갈 수 있는지, 그 사람을 협력자로 지목하는 과정에 어떠한 불편부당함은 없었는지, 또 그와 함께 일을 할 때 서로의 업무와 책임범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하고 또 추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때를 대비해 계약서나 기타 서류들은 꼼꼼히 챙겨야 한다.

일부 교도들의 입장에서 당장에는 섭섭하다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지만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원불교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좋아질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공평한,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원불교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 교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교단이 지난 100년 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 다가올 100년에도 그러한 불편부당한 취사선택으로 교단 발전과 사회발전을 선도해 가길 바란다.

<마포교당, 원불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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