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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원로교무 1 / 삼세업장 밀려온 교화현장
박원석 원로교무 1 / 삼세업장 밀려온 교화현장
  • 정리=이성심 기자
  • 승인 2015.12.18
  • 호수 17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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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대불공 46
▲ 박원석 원로교무

불광, 업력 밀려온 근무지

현장 말 못할 어려움 겪어


대타원 박원석(戴陀圓 朴圓錫) 원로교무는 원기28년 6월 조희선 교도의 연원으로 남원교당에서 입교했다.
박 원로교무의 어머니는 원기23년 상산 박장식 종사의 모친인 정형섭 교도의 연원으로 대종사를 뵙고 발심한 아버지와 같이 태교에서부터 전무출신시키겠다는 염원이었다.

박 원로교무는 이러한 부모의 뜻을 받들어 일호의 사심없이 일원대도에 귀의했다. 19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에 입학하여 공사에 빚이 되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성원에 사비로 졸업을 했다.

첫 교무 발령은 23세에 원광중·고등학교 주사로 근무,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서울교당과 불광교당에서 근무했다. 부와 빈의 극한 교화현장에서 신심과 서원을 반조한 교화현장이었다.

불광교당은 삼세 업력이 밀려온 교당 근무지였다.
원기53년 그는 서울교당 부교무로 3년 동안 학생교화에 열정을 다했다. 부자집 막내마냥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출장법회를 보아오던 불광교당에 원기56년 4월 부임했다.

대로에서 1킬로미터쯤 폐수가 흐르는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깊숙한 골목 어귀에 국민주택을 전세로 얻어 부임했다. 그런데 '동네 가운데 종교가 들어왔다'고 주위에서 야단이고 옆집에서는 담에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법회를 방해했다

경험이 없는 탓으로 벽을 헐어 법당을 만들고 오래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집 주인의 성화에 원기56년 10월 6개월 반만에 다시 전세를 얻어 이사했다. 그런데 그곳은 예수교 다니는 장로가 사 놓은 집이었다.

간판도 못 달고 일원상 봉안도 못하게 하여 간판은 대문 앞 버드나무에 붙여 법회와 행사시에만 일원상을 모시고 행사가 없을 땐 숨겨놓고 지내던 중 기도중 기원문을 올리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러나 이 전샛집마저도 1년이 못된 원기57년 7월 재판관계로 경매에 붙여져서 부득이 교당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신축 중인 아파트 상가에 입주자가 별로 없다는 소식에 계약을 했다. 법당을 꾸미기도 편리하고 장기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2층 끝으로 이전했다.

원기58년 아파트로 옮긴 지 1년이 지나도록 입주자나 관리자로부터 어떠한 항의도 받아본 일 없이 주민과 어린이들이 나를 보면 서로 안기면서 잘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기58년 한국일보 7월 1일자 신문 지방면에 '종교 소음공해'라는 큰 타이틀과 아파트 앞에 있는 '원불교'라는 큰 간판을 사진 찍어 기사화가 되었다.

이 기사로 인해 아파트 입주자 50세대 중 대표 2명과 교도들 간에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양측 대표가 서부경찰서에 연행되어 갔다. 당시 교무는 법회 중이라 가지 못하고 윤법중·최종업 교도가 갔다. 양측은 서로 화해하기로 하고 훈방되었다.

그러나 7월29일 법회와 8월1일 3일간 월초기도에 아파트 주민 2명이 문을 두드리고 부수는 등 다시 행패를 부렸다.

8월3일 저녁 11시경 서부경찰서에서 경찰차가 출동했다. 그리고 주민과 나를 연행해 갔다. 조사를 받고 주민은 새벽3시에 훈방됐다.

교무에게는 아파트에서 목탁과 종을 치고, 향을 피워서 주민들 잠을 깨워 신경 쇠약에 걸려 생활에 지장을 준다고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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