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곳에 행복 있어
원불교적 가치 찾도록 노력
소태산 가르침, 잘 이어가야

▲ 이덕윤 교무 / 광주교당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교단은 이제 100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2세기를 맞이하게 된다. 나는 반백년이 넘는 내 인생을 원불교에 몸담고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원기100년 안에 출가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원불교를 만나 성불제중이라는 명확한 자아실현의 길을 찾았고, 내가 가는 길에 많은 재가 출가 도반들을 얻었고,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의 심경으로 안분지도의 평화를 피우고 있어서다.

그래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원기100년이 일궈낸 우리들은 적어도 일체 대중의 앞길에 오직 광명과 평탄과 행복을 기도하는 행복한 교도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을 알고 그것을 체득해 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 진리를 통해 성불제중의 서원을 가르쳐줬다. 우리는 이를 자아실현의 근원을 알고 불공하는 21세기형 행복자이다.

원기4년, 소태산 대종사가 희망의 초석을 놓고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를 시작할 때, 구인선진은 행복의 근원을 알았고, 무한대의 진리적 성과를 일궈냈다.

원불교 2세기의 출발을 앞두고 세계 20여개 나라, 국내 16개 교구, 520여개 교당, 200여개 기관 확립은 공부하는 도인들이 일군 행복한 성과물이다. 원불교 2세기에는 우리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행복한 심장박동으로 울려야 한다.

두 번째는 원불교 2세기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시대다. 인간관계, 종교관계, 정치관계 등 모든 관계마다 원만하고 지공무사한 사회성을 요구하게 된다. 공자는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는 고립과 소외로부터의 행복을 강조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회상 창립기에 인연들의 결속과 단합을 교단의 초석으로 삼았다. 만나는 인연마다 도로써 관계를 맺으라는 사실적 불공법은 원불교인을 매우 사회성이 높은 교도로 성장시킨 가르침이 되었다.

정산종사는 이를 인화의 기술이라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원근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 생령을 위하여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관계적 사회성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교단이 되지 않게 자주 돌아보고 진단해 봐야 한다. 만일 우리들이 키워내지 못하는 사회성이 있다면 그것은 공(公)을 빙자한 사(私), 출가와 반목하는 출가, 출가와 반목하는 재가, 재가와 반목하는 재가, 빈부격차가 만연한 교화지 등일 것이다. 이러한 불신의 조건이 뿌리내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화·기화·인화의 기술을 교단 구성원들의 중요한 행복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세 번째는 우리는 기필코 연꽃이 돼야 한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절대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변화와 혁신의 글로벌 시대는 원불교도의 삶에 더 많은 경계를 던져줄 것이다. 우리는 원불교적인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생활에 끝없이 노출되어 있다. 끝없이 창출되는 사회구조에 우리는 길들여지고 물들어갈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인 가치는 교단적인 가치 규범을 위협할 것이다. 이때에 우리 안에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사회적 명예와 부의 가치로 가리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러한 경계는 나와 상대를 나누고 비교하며 끝없는 괴로움을 불러올 것이다. 그런 가치 규범은 행복 지수를 낮추게 한다. 그래서 공자는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연꽃의 마음이다.

행복이 우리 삶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우리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원하는 것을 이루는 곳에 행복이 있다. 원기100년 동안 선진들이 행복하다고 외친 그 말을 이제 우리가 염화미소로 받아야 한다. 그 미소가 원불교 2세기의 든든한 약속이자 희망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