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의 호소의 벽.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에는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규모나 성격에서 일반적인 박물관과 많이 다르다. 특정한 사람을 기념하고 영웅으로 추앙하는 곳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아리따운 청춘을 빼앗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다.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은 참 어렵게 만들어졌다. 그 시작은 1992년 1월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에 사과와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당시 모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물관을 짓자며 조금씩 돈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지원해준 금액은 턱없이 부족한 5억원 정도였고, 기업들마저 '회사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하곤 했다.
결국 평범한 시민들의 돈을 모아, 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20억 원을 모금하는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렇게 어렵게 모아 서대문 독립공원에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이번엔 독립관련 단체들이 반대했다. 독립공원의 성격에 박물관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박물관 건립에 대해 '몰역사적인 행위이고 애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면서 반대하기까지 했다. 마치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하지만, 속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깨끗하지 않는 존재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결국 독립공원을 포기하고, 어느 고마운 분의 기부로 마련한 성산동 주택에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설계를 맡은 부부건축가 장영철·전숙희는 신축 대신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한다.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은, 일반적인 박물관처럼 거창한 입구가 아니라, 옆에 뚫린 작은 문으로 들어가게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동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다시 왼쪽 철문을 열고 건물 뒤쪽을 빠져나가면, '쇄석길(역사 속으로)'이라고 불리는 좁고 긴 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원래 주택이었던 건물과 뒷집의 축대가 만들어낸 긴 공간에는, 하얀 색 꽃이 피어나는 검은색 실루엣의 소녀들이 한쪽 벽에 그려져 있고, 반대쪽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을 그대로 본뜬 부조가 마치 시간에 얼어붙은 듯이 벽에 박혀있다. 쇄석들이 가득 찬 이 공간을 걸으면, 발밑에서 사그락거리는 돌 소리가 마치 할머니들의 애통한 울음처럼 들린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옛날 보일러실로 쓰이던 지하 공간이 나온다. 습한 공기가 감도는 공간에는 할머니들의 슬픈 증언들이 영상으로 흐른다. 다시 지상 층으로 올라오면 거친 벽에 둘러싼 계단을 만나게 된다. 계단실을 둘러싸고 있던 벽의 마감을 모두 걷어내고 들어난 울퉁불퉁한 벽돌벽은 '호소의 벽'이라 불린다. 마치 오랜 세월 상처를 품고 사는 할머니들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할머니 한분 한분의 분노와 회환,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가 벽돌에 적혀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 참 가슴이 찡해진다.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중앙에 1층과 2층을 관통하는 공간에는 박물관이 지어질 수 있게 도와준 8000명의 이름이 철판에 빼곡하게 적혀있다.

전시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면 2층 베란다로 나오게 된다. 앞에는 검은 색 벽돌이 하나 건너 하나씩 쌓여 틈새 사이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벽돌 벽 하나하나 마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얼굴이 붙어 있다, 틈새 사이사이 누군가 놓고 간 헌화들이 꽂혀있다.

마지막으로 1층으로 내려가면 야생화가 가득한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게 추모공간을 돌아 치유공간으로 전체 동선이 마무리된다. 마치 진정한 치유는 진정한 추모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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