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어샵, 재활용 넘어 나만의 것으로 재탄생

▲ 폐자전거의 남는 바퀴를 '업사이클링'해 탄생한 컵걸이는 고객들에게 언제나 인기다.
다시쓰고 고쳐쓰며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것을 만드는 리페어(repair) 샵들이 주목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불황과 자원고갈의 영향으로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지만,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내 존재감을 물건에 투영하는 트렌드도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리 방영중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나 TV 예능에서 복고를 내세우는 현상은, 한때 행복하고 넉넉했던 때를 추억하고 싶어하는 우리 시대의 단면이다.

흔히 수리점이나 공방 등을 통해 고쳐쓰고 개성을 입혔던 과거를 지나, 리페어샵들은 한 단계 도약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 중 선두주자는 대한민국 공구1번지 대구 북성로에 위치한 장거살롱이다. 자전거 수리점과 카페가 결합된 이 곳은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찾는 명소다.

폐자전거 수리 및 커스텀 제작

자전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장거'와 '살롱'을 결합해 만든 이름처럼, 장거살롱은 자전거를 테마로 한 카페다. 다만 이 곳에서는 자전거가 소품이나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다. 애초에 수리점으로 시작했었는데, 고객들이 기다리는 동안 "커피 한잔 달라"고 요청을 해와 내친 김에 카페를 차린 특이한 경우다.

"고장에 따른 수리도 있지만, 나만의 커스텀(기성복을 디자이너가 재가공하는 등의 기성제품과 디자이너제품의 중간 단계)이나 특정 부품 교환 요청이 많다. 혹은 자신의 자전거를 해체해 재조립해보는 시도도 있다."

자전거 인구 1200만명 시대, 장거살롱은 기존의 '자전거포'에서는 할 수 없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전수윤 대표가 장거살롱의 문을 연 것 부터가 이런 대안적 생각에서 나왔다. 자전거 수리공으로 '희망자전거제작소'에서 특이한 자전거를 만들었던 그는 어느날 우리 사회의 자전거문화가 너무 소모적이고 과시적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신문을 구독하거나 차를 구입하면 자전거를 끼워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에 쓸 수 있는 자전거도 마구 버려졌다. 더구나 자전거의 활용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비싼 자전거를 좇는 사치적인 분위기 속에 쓸만한 자전거도 방치되곤 했다. 이 아까운 자원들을 모아 재미있는 자전거, 세상에 하나뿐인 자전거를 만든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는 부품으로 인테리어 소품 업사이클링

장거살롱은 인근에 방치된 자전거들을 수거해 수리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수리로 멀쩡해진 자전거는 공공자전거로 기부도 하고, 못 쓰는 것은 아예 분해해 부품으로 활용했다. 자전거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난로나 여타의 기계, 설치미술작업, 인테리어 재료로 쓰기도 했다. 그렇게 새 숨을 불어넣은 자전거가 이미 수백대며, 카페 한 켠 외에도 작업장이며 폐자전거 보관소 등도 몇 군데로 늘어났다.

"오래 타던 자전거의 폐타이어를 새 자전거에 감아 의미를 살린 경우도 있었다. 남는 바퀴로 컵걸이나 테이블을 만들어 쓰는 '업사이클링(재활용을 넘어 디자인과 활용성을 가미해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하는데 반응이 꽤 좋다."

최근에는 앞바퀴가 두 개인 역삼륜 자전거를 개조해 '움직이는 자전거 카페'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해결중인 장거살롱, 늘 새롭고 참신한 도전 앞에 설레며 장거살롱을 오가는 수많은 라이더들과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그런데 운영 실제는 어떨까. '펑크'는 8천원, 조립은 2만원에 부품교환은 재료비만 받고 있는데다 커피값마저 2천5백원이다. 몇시간 혹은 하루짜리 체험이나 교육 과정도 전문성과 품에 비해 몇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사실 일반적인 수리나 커피 판매 보다는 외부 워크샵이나 협업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지만 그나마도 크지 않다. 장거살롱은 경제적 이익보다는 재활용과 자전거문화확산의 가치로 살아가는 대안적인 공간인 것이다.

"인근에 자전거수리점이 또 있는데, 펑크같은 간단한 수리는 고객들에게 그쪽으로 가라고도 말씀드린다. 다양한 리페어샵을 통해 지역이 활기를 띄고, 나아가 대구 전체에 자전거 인구가 더 늘어 건강과 환경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대구 북성로의 장거살롱은 자전거 수리와 카페를 겸한 대안적 공간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실버세대의 재능기부로 장난감 무료수리

장거살롱이 어른 버전의 리페어샵이라면, 어린이들을 위한 곳도 있다. 2011년 인천 관교동에 문을 연 '키니스 장난감병원'은 따뜻한 기부 소식으로도 화제가 됐다.

공학도 출신의 60대 할아버지 6명이 '의사'로 재직하며 무료로 수리를 해주는 이 병원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장난감의 사진과 증상을 올리면 진료 예약이 되고, 병원 측에서 댓글을 통해 입원과 퇴원 날짜를 공지한다.

1주일이면 100에서 150건에 이르는 진료에 나서는 의사들은 대학교수, 고교 교장, 전자회사 출신들로, 60시간동안의 실습 과정을 이수한 '박사'들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은 물론, 은퇴한 실버세대에게 수리 기술을 전수해 치매 예방도 하며 세대 간 공존을 구현하는 이 시대의 멋진 어른들이다. 후원금을 통해 운영되는 이 병원은 지난 17일 인천 남구에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1천여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볼펜 케이스를 끼워 썼던 몽당연필이나 몇 번이고 수리하며 수명을 연장시키던 가전제품에 대한 추억과 향수는 누구에게나 있다. 물질이 너무나 빠르게 변한 지금, 당시의 검박하고 아끼던 우리의 정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하며 고쳐쓰고 다시쓰는 마음, 나아가 나만의 특별한 보물로 재탄생시키는 대안적인 공간들이 더욱 반가운 요즘이다.
▲ 장거살롱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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