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간의 관계, 〈정전〉 천지은 연기론적 제시

지구 기후위기에 불구하고
각국의 이해관계로 합의문 어려워

세계 종교계 성명과 메시지로
심각성 알리고 합의문 독려
▲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강남교당 이도관(호적명 광윤) 교도가 〈정전〉을 인용, 연기론적 입장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12월12일에 종료된 파리 기후변화총회는 지구를 한울안으로 하여 교토의정서 체제를 대체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새로운 기후체제에 대한 합의문인 '파리 협정'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총회에는 본회의 말고도 여러 개의 부속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세계환경법률가대회의 인류공동체(humaniy)의 권리선언에 관한 학술대회이다. 인류공동체의 권리선언은 미테랑 전 대통령이 '인간의 권리'에만 한정되었던 1879년의 프랑스 인권(human right)선언을 대체할 새로운 인류공동체의 권리선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작년 말 파리 기후변화총회의 의장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이 이번 총회에서는 '인류공동체의 권리'(right of the humanity) 선언을 제안하겠다고 발표하고, 전 장관인 르빠즈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통령 위원회위원장인 르빠즈 변호사는 2015년 9월25일 제안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였는데 빅토르 위고가 제창했던 '인류는 한 가족(famille humaine)'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전문과 4개 원칙, 6개 권리 및 6개 의무로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 위원회가 작성한 인류공동체의 권리선언은 사상적으로는 빅토르 위고로부터 1948년 유엔 인권선언, 1992년의 리오환경회의, 및 1997년 유네스코가 선언한 '미래세대에 대한 현재세대의 책임 선언'의 정신을 계승해 더욱 확대, 발전시키고 있는데, 선언문은 '세대간의 단결', '인류의 존엄성', '인류존재의 지속성' 및 '세대간의 차별 금지'를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제안서 내용의 혁신적인 것은 첫째,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상호의존(interdependance; 연기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둘째, 인류공동체(humanity)의 범위는 과거 조상, 현재세대, 미래세대 뿐만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즉 연기적으로 얽혀 있는 모든 생명체는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고, 이에 대한 의무는 현재세대가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의 법인격과 법적 이익(원고적격)을 어떻게 대변해야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있다.

인류공동체(humaniy)의 권리선언에 관한 학술대회는 총회 장소인 부르제의 장외 세미나로 진행되어 파리고등사회연구원 강당에서 진행되고, 기조 발제는 대통령 위원회 위원장인 르빠즈 변호사가 하고 필자는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서 '불교철학에서 본 인류공동체의 권리선언'이란 주제로 발제했다.

발제에서 필자는 제안서의 핵심적 개혁 내용을 조문별로 거론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연기론으로 설명하면서 〈정전〉의 천지은을 소개했다. 미래세대에 대한 현재세대의 책임에 관하여는 인과론에 바탕한 업에 의한 윤회사상을 설명하면서 미래세대는 현재세대의 연장으로 설명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도 육도 윤회를 설명하며 인간은 생명체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이번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법적구속력 있는 합의문 도출 자체가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여 당초 이번 총회에 인류공동체의 권리 선언문을 제출하려던 방침을 바꾸어 내년에 유엔 총회에 바로 상정하여 통과시키기로 했다.

사실 지구의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합의문 자체가 어려운 문제였으므로 이번 회의에서의 합의문 도출과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인식을 독려하는 세계 종교계의 성명과 메시지가 이어졌다.

먼저 2009년 '행동할 때는 지금: 불교도 기후변화선언'에 달라이라마, 틱 낫한 스님 등 5000여 명 이상의 불자들이 서명했다.

이 선언은 20명의 저명한 불교지도자들이 저술한 〈기후위기에 대한 불교도의 대응(A Buddhist Response to the Climate Emergency)〉 2009. 책에 대하여 D. T. Loy박사, Bhikkhu Bodhi 스님, 그리고 J. Stanley 박사가 선언문 형태로 붙인 것인데 달라이 라마가 제일 먼저 서명했다.

이 선언문은 개정되어 제21차 파리 기후총회를 앞두고 2015년 10월29일 '불교지도자 기후변화 성명서'로 발표됐다. 이 성명서에서 불교지도자들은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다른 종의 생존이 위기에 처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붓다의 연기적 깨달음에 기초해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인과성과 우리 행동의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환경적인 영향을 경감하는 중요한 단계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불교계의 이 두 개의 선언 사이에 2015년 6월18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교황회칙(Encyclicals)이 발표됐다. 교황회칙에서는 지구를 더불어 사는 하나의 집으로 보고, 무절제한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경계하고, "현대의 과학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온 인류와 세계를 지배하는 결과도 낳는다. 따라서 인류는 올바른 한계를 정하고 바른 자제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이 필요(105항)하다"고 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는 2009년 불교도 선언 및 저술에서도 강조되었는데 오늘날의 환경의 결과는 집단적 업(Karma)으로서 우리는 이미 불살생계를 범했고, 지구는 우리의 어머니이자 가정이라며, 더 많은 소비를 하려는 충동은 고통의 원인인 갈망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원기100년 경산종법사는 대각개교절 경축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포인 생령들을 함부로 살상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하는 무자비한 일이며, 천지 자연이 없어서는 살 수 없다는 생명적 은혜를 우리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하며, 자연을 후손만대의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종교지도자들, 특히 불교지도자들의 선언은 '인류공동체의 권리'라는 구체적인 법적 범위를 제시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이미 지구를 환경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많은 제언들을 하였고, '인류공동체의 권리 선언'이라는 법학적 결과물은 불교철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불교철학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필자는 발제에서 서양법학과 불교철학의 유사성을 설명하며 양자의 만남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르빠즈 위원장과, 상호의존(연기 ; interdependance) 분과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관심표명이 있었다.
▲ 이도관(광윤) 교도 /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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