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단법·훈련법 공부인들 지침
원불교인, 교법으로 무장해야

▲ 김진응 교도 / 진북교당
원불교 2세기의 첫 출발을 알리는 희망찬 병신년 새해를 맞았다. 지난 100년의 교단사를 돌아보면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선진들의 혈심혈성이 아니고서 어찌 이 교단을 이룰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은덕으로 쌓아온 교단 100년의 결실이 지금의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원불교 2세기의 서막을 지난해 11월22일 영산성지 대각전에는 열린 '원불교 100년 성업대정진기도 3500일 회향식'에서 보게 됐다. 그날 영산성지에는 맑은 서기가 어려 전국에서 모여든 재가 출가교도들의 향기어린 마음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은 소태산 대종사의 따스한 품인 양 실로 감탄스러웠다.

3500일! 실로 많은 길을 걸어왔다. 아니 달려왔다고 해야 맞다. 우리는 원기91년 4월27일을 기억한다. 영모전 앞 광장에 1000여명이 넘는 교도님들이 촛불을 들고 10년 기도의 대장정에 들어가기 위해 그 추위를 이기고 서있었다.

'원불교 100년은 세상의 희망!' 그렇다. 그 100년의 희망을 딱 10년 앞두고 진행된 원불교100년성업 대정진기도는 기도로써 세상의 희망탑을 쌓아가고, 촛불과 목탁을 들어 세상의 평화를 밝히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도가 산 넘고 바다 건너 남으로는 마라도와 한라산까지, 또 지리산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잇고 또 이어 3500일이 되던 그날 대종사에게 봉고를 올린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노라고 크게 외치며 대종사를 불러보았다.

다시 돌아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10년을 함께 달렸는가. 그것은 소통이다. 무슨 일이든 막혀 있으면 안 된다. 무조건 뚫어야 세상에 희망의 빛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함이다. 박장식 대원정사는 열반송을 남기며 "하나가 돼야 합니다. 둘이면 안 됩니다. 잘 될 것입니다" 하고 교단에 경종을 울리고 떠났다. 이 법문을 우리 모두가 깊이 간직하고 실천해야 한다.

원기101년이다. 지난 100년은 그 발전 속도가 가히 초고속을 달렸다. 이제 101년으로 건너가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보림을 해야 한다. 무조건 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멈추어 되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좀 더 힘차게 달릴 수 있다.

대종사가 어느 날 물었다. "어떻게 하여야 교화대불공이 되겠는가." 나는 답했다. "모든 일이 다 가까운 데로부터 되는 것이오니, 내가 먼저 확실한 신을 세우고 그 다음 주위인연을 무위이화 되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나이다."

계절은 한파가 몰아쳐서 모든 만물이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는데 훈훈한 봄 그리움이 나를 어쩔 줄 모르게 한다. 원불교 101년의 봄은 왠지 특별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원기99년 마지막 날 밤, 총부 대각전에서 400배 참회의 절을 하고 경산종법사와 함께하는 신년 타종행사에 참석하면서 나름 다짐한 것이 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청운회장이 되겠다는 서원이었다. 그리고 4월 법위승급식에서 대중 앞에 스스로 물었다. "나는 과연 대종사의 심통제자로서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통달하여 참된 중도행을 하고 있는가?"

대종사가 대각하고 교문을 열 때에 직접 제정한 교법과 교화단법과 훈련법은 우리 공부인들이 영생을 두고 닦아가야 할 지침서이다. 공부인의 공부는 교법을 벗어나 할 수 없다. 교법을 벗어나면 순간적으로는 여유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5만년 대운의 우리 원불교는 조급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뚜벅뚜벅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자세로 교법을 주체삼아 훈련으로 무장해야 된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미래를 보며 교도 한 분 한 분을 철저히 훈련으로 무장시킨다면 어떠한 함지사지가 우리에게 다가와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뿌리가 제대로 박혀 있을 때 대종사가 염원한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되어 낙원 세상을 이루게 될 것이다. 참으로 교법대로 살아간다면 교화대불공도 자신성업봉찬도 자연 이루어지리라. 그리하여 모두 함께 여래위에 오르는 그날 우리 원불교 만만세를 외쳐보자.

<원불교청운회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