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은 정신이고, 문화이며 과학입니다'
옷에는 그 사람만의 혼이 담겨 있다는 생각
우리 옷, 한복의 원형 복원하는 작업 몰두

삼십 여 년 넘게 '한복', 그 한 가지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한복 장인 김혜순(법명 예정·나포리교당). 드라마 '황진이', 영화 '광해' '서편제' 등 전 국민이 사랑했던 작품들 속, 한복이 등장하는 영상의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 섭외 차 시도했던 그와의 통화에서,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차갑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인터뷰하러 가는 날, 겨울바람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던 이유도 그에 대한 내 마음 탓이었을지 모른다.

예정(藝丁), 대한민국 대표 한복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그가 운영하는 한복 샾이다. 그는 '한복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을 한복과 함께 살면서 행복했어요" 그가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한복 짓는 일을 하면서 나는 옷에 '혼'이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옷에는 그 사람의 취향과 안목, 태도와 마음이 오롯이 드러난다고 믿고 있죠. 값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어도, 사람이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은 듯 어색하고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금도 옷에는 그 사람만의 혼이 담겨 있다는 생각 하나로 한복을 짓고 있습니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그의 말에 무게감이 더해졌다.

"33년 전, 강남 테헤란로는 허허벌판이었어요. 우리 가게 하나만 덩그라니 있었지요" 그 당시 '예쁜 한복집'으로 통했던, 그의 가게. 그는 이곳에서 한복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옷의 원형을 복원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물이 그의 저서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우리 옷, 저고리의 역사와 시대별 변천과정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는 그다. "수많은 복식 관련 자료와 사료를 발굴해 우리나라 복식사를 정립했어요. 호방한 고려 여인의 긴 저고리, 구중심처 여인들의 격조 있는 삼화장저고리,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무명저고리, 기녀들의 열망이 숨겨진 초미니 저고리 등 당시 여인들의 삶과 사랑이 오롯이 담긴 저고리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지요."

그가 저고리의 유래와 종류, 구성,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저고리 600년 변천사' 전시회를 연 것도 우리 한복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널리 알리자는 일념에서다. 그녀가 바늘을 들고 산 세월만큼 우리 옷 한복의 과거는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무언가 빠져들면 한 가지 생각만 할 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그는 '영국 왕실과 한국 전통의 만남' '2010년 G20 패션쇼' 'The Korea American Association of Greater New York'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패션쇼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죽도록 화려하게' 일에만 집중했다.

결과, FENDI는 '세계 아티스트 10인'으로 그를 선정했다. 2007년에는 한국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복식과학재단 상임이사, 원광디지털대학교 겸임교수,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남긴다는 것은, 열심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가, 두고 가는 것 아닐까요?" 가슴을 쿵 하고 두드리는 그의 말. 그는 예의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고 싶어서 일했던 모든 순간 순간이 행복했어요. 일의 마무리는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열심히 일하다가, 놓고 가면 되는 것이죠. 그 다음은 다음 사람 몫이지요." 마음으로 깊이 염원하고 간절히 바라면, '어느 순간 내가 내 자리에 서있었다'는 그의 말이 또 한 번 가슴을 쿵하고 두드린다.

그는 사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접받는 식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다. 번잡한 인연 맺음이나 이해득실을 따진 인맥관리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에게 고객명단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내 마음 속 인연의 명단은 뚜렷해요. 평소에 좋은 것을 나누는 인연들이죠"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그 사람에 대한 정성으로 이어지고, 조건 없는 충실한 사이로 발전한다. 그만의 '인연의 셈법'인 셈이다.

그에게 남아있는 인생의 숙제가 있다.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고향인 순천에 디자인스쿨 '예정관(藝丁館)'을 개관했다. 어린 꿈나무들이 예술 분야에서 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공간이다. 바깥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는 그가 매주 달려가는 예정관, 그는 이곳에서 다문화이주여성들에게 옷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나누고 줄 수 있을 때 행복하지요. 마을 분들이 손수 자기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 남은 바람입니다." '차갑다'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던 인터뷰. 사람의 '혼'을 담아내는 그의 한복처럼, 사람을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그는, 이 시대 진정한 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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