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여러가지 맛 내지만
자기 색깔을 내지 않아
화이불류는 부처의 심법

대종경 공부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아 새벽 찬 기운에 몸도 마음도 활기를 더해 주더니 날이 밝아 오니 금방 다 녹아서 처마 끝에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비오는 듯 하다. 요 며칠 사이로 간간히 흰눈이 날린다.
모두 물의 조화이다. 물은 비가 되어 내리고, 눈이 되어 날리고, 서리가 되어 대지를 덮는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장소도 없고, 때를 가리지도 않는다.

또한 더러운 곳에 가면 씻겨주고, 음식에 들어가면 온가지 먹거리를 만들어주고 도무지 필요하지 않는 곳이 없다. 부드럽기 때문에 어디든 다 통하여 못가는 곳이 없고 만물을 먹여 살려준다.
그러면서 대해장강을 만들고 바위도 뚫을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며 늘 아래로 흐른다.

이같이 만물을 살리는 큰 역할을 하는 물이지만 본래의 맛은 담담하여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지가지의 맛으로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 많지만 그 음식에 들어가서 보조를 할 뿐 물은 자기의 색깔을 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든지 쓰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물이 자기 고유의 향이나 맛을 가지고 있다면 쓰임새가 한두가지로 한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누구나 특성이나 능한 면이 있다. 그것을 활용하여 복도 짓고 도움도 받지만 그걸로 인하여 상(相)이 생기거나 매이게 되면 스스로 해(害)를 불러올 수 있다. 자기가 잘하는 것에도 매이게 되면 그만큼 국이 한정된다.

보통 범부 중생들은 스스로 자기 그림자에 속아서 틀을 만들고 아집속에 안주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속에서 온갖 아상을 비롯하여 가지 가지의 중생심이 발동한다. 자기 과시욕이나 특별해지려는 욕구가 생기면서 원만한 작용이 나오지 않고 모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가지고 있는 특성은 더욱 더 대중들과 화해지는데 장애가 된다.

유가에 '화이불류(和而不流)'라는 말이 있다. 만유에 화하되 세속에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이 어우러져서 살지만 특별히 띄지 않고 여기와도 화해지고 저기가도 화해진다. 자기의 특성을 앞세우면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집에 들면 노복같고 들에 나면 농부 같고 산에 가면 목동 같고 길에 나면 고로(古老) 같이'대종사님 가사에 나오는 글이다.

여래와 범부는 평범하기 때문에 같다고 하였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 사실 가장 위대한 삶이다. 자기의 특성을 다듬어서 대중들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자기공부의 완성이다. 모든 예법도 간소화 되어가고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대에 평범한 가운데 진리와 법도가 있는 줄을 알아서 그때 그때 실지에 맞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곧 수행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법이 아니면 도저히 이끌어 갈수 없는 시대이다.

지극히 사소한 움직임이나 찰나에 스쳐지나가는 한생각에 주의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와 세상은 요란해진다. 지극히 고요함 속에 강렬하게 떠오르는 새해의 광명을 일상(日常)에서 맞이 할줄 알아야 한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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