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살아갈수록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산다고들 하지만, 잘 살지 못하면 오히려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도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죠.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사람일수록 그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진리를 믿고, 좋은 스승과 도반이 있는 종교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르죠.

젊어서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소중한 것들을 먼저 해결하느라 종교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이란 살아갈수록 더 바쁘고 복잡해진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무작정 돈벌고 열심히 살기'보다는 '진리를 믿고 잘 사는 일'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지만, 실제 삶이 그렇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행불행에는 차이가 있죠. 무슨 차이일까요?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습관이나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원불교에는 사연사조(捨捐四條)라고 하여 우리가 버려야할 4가지 조목이 있습니다. 바로 불신(不信)· 탐욕(貪慾)·나(懶)·우(愚)이죠.

불신이라 함은 말 그대로 '믿지 않는 것'으로,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결정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신념에 좌우됩니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행동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정을 못할 뿐 아니라 불안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불신을 믿음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요? 경험하기 어려운 영역은 검증된 이들이 설파한 교리나 이론 등에 대해 순수한 믿음을 갖고 스스로 체득해 나가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이해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굳건한 믿음은 어떠한 유혹이나 갈등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켜주고, 만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죠. 그러니 불안하고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과 이해를 점검해야 합니다. 어디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보는 거죠.

탐욕이란 '모든 일을 상도에 벗어나서 과히 취함'을 말합니다. '과욕이 화를 부른다'고 하죠. 적당한 선에서 행복하지 못하고, 과하게 바라는 데서 많은 불행과 고통이 초래됩니다. 그러니 쉽게 화가 나고 자주 힘들다 느껴진다면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내 욕심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나태는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하기 싫어함'을 말합니다. 이 게으름의 문제는 누구나 유혹당하기 쉽고, 일상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죠. 하려는 사람에게는 못 할 일이 없지만, 안 하려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삶의 목표를 명확히 하여 나태가 우리를 강급의 길로 끌고 가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죠.

우치란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함'을 말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스스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음 또한 나태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버려야 할 이 4가지 조목 가운데 특히 지금 우리가 걸려 있는 조목은 무엇일까요?

<밴쿠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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