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키워내라"
보육사업의 참 가치

▲ 최준명 이사장과 한국보육원 가족들이 창립자인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의 동상 앞 진달래동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종당에는 하나라." 한국전쟁 발발 후 매일매일 쏟아지는 고아들을 바라보며,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육도윤회와 사생일신(四生一身)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키워 내리라"는 팔타원 종사의 교육철학은 72년간 이어온 한국보육원의 정신적 유산이 되었고, 한국 복지계와 원불교 자선사업의 효시가 됐다.

정신·육신·물질 자력 갖춘

보통사람으로 키우는 게

보육사업의 참 가치

보육사업, 진실된 사랑으로 임해야

해방을 맞아 귀환한 전재동포구호를 위해 원불교는 서울, 익산, 부산, 전주 등지에서 전재동포구호소를 설립했다. 주산 송도성 종사가 1945년 12월, 18명의 고아들을 팔타원 종사 소유인 동대문부인병원에 수용한 것이 원불교 보육사업의 시작이다.

원기31년(1946) 2월, 서울 한남동 소재 일본 사찰인 약초관음사를 인수해 '서울보화원(普和園)'이라 명명하고 유아 15명을 포함 총 75명이 터전을 잡았다. 초대원장인 팔타원 종사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원기35년(1950) 12월, 유엔군 패트리지 장군과 브래이스델 종군목사의 배려와 주한미제5공군의 헤스 대령에 의해 제주도에 긴급 피난시킨 907명의 전쟁고아들을 맡아 '한국보육원'을 설립했으며, 원기40년(1955)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이 현재의 휘경여중·고교 자리다.

한국보육원은 '무자력자 보호'의 정신에 입각해 지금껏 3000여 명의 부모 없는 아동과 결손가정 아동 등 무의탁 원생들을 교육과 직업보도사업을 통해 건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배출했다. 원기67년(1982) 2월23일, 사회복지법인 창필재단을 설립함으로써 보육원이 교단에 편입됐고, 원기89년(2004)부터 건산 최준명 종사(요진건설 대표)가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팔타원님의 품이 늘 그립다. 그분은 살아있는 페스탈로치다. 뼛속부터 우러나는 사랑의 소유자다"고 추모했다.

최 이사장은 "한국보육원은 전무출신 교육의 요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많은 교역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창업기 인재들로 성장했다. 그분들이 모두 교단의 기둥이 됐다"며 "한남동 정각사 산 10번지, 당시 보화원 주소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왔지만 너무나 곤궁한 살림에 고생이 절절했다. 썩은 밀가루로 수제비 만들어 먹었단 얘기는 지금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살았다"고 70여 년 세월을 회고했다.

최 이사장은 "보육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양육사가 돼서는 안된다. 아이들을 참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며 팔타원 종사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때 운동장에 놀고 있는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 피가 흘렀다.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흙을 손에 묻혀 약처럼 바르고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팔타원 종사는 '아까징기(소독약)'를 가져와 바르게 했고, "부모가 있으면 직접 약을 발라주겠지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내 아픔은 내가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피나는 상처를 흙으로 문지른다. 사랑으로 감싸서 저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고아사업이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키워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자기결정권 갖춘 인재양성

원기55년(1970),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자리한 보육원은 현재 7세부터 19세까지의 재학생 34명과 김육미 원장 외 14명의 직원이 행복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사랑으로, 자력생활하는 사람, 의뢰심이 없는 사람, 정직한 사람,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원훈은 팔타원 종사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원불교 교리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실제로 최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자격증과 전문가 명함을 내놓기 전 "아이들 마음 아프게 하지 말라. 자기 집이 아니니 무엇인들 자유롭겠느냐"며 진정성 있는 사랑을 먼저 배울 것을 주문한다.

김육미 원장(법명 흥덕, 정인덕 교무 정토)은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는 것, 그 시기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자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한다"며 시작부터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온 아이들은 자존감이 매우 약해진 상태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처한 현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인내를 가지고 대화함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해 가고 있다"고 자기결정권의 힘을 강조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아동의 수가 줄어들면서 보육사업도 대규모 기숙형 숙소에서 소숙사 또는 공동생활가정 형태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정부의 아동복지정책 또한 보편적 복지로 전환했으며, 최근에는 아동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공동생활가정 600여 곳을 설치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2008년 지방으로 이양됐던 사회복지사업이 중앙으로 환원됐으나, 아동사업은 그대로 지자체에 남게 돼 한국보육원을 관할하는 양주시도 운영비 지원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2015년 8월부터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아동 1인당 거실 면적이 3.3㎡에서 6.6㎡로 바뀌게 돼 60명 정원에서 48명으로 변경됐으며, 1인당 담당 보육사들의 배치수도 10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한국보육원도 2016년부터는 30인 미만 시설로 운영될 예정이다.

자치회 활동, 봉사 손길 끊임없이 이어져

개개인의 사생활을 보장받기 어려운 집단시설이지만 아이들의 특성을 살린 예체능 교육과 퇴소 후 자립 프로그램이 한국보육원의 특화된 과정이다. 학생들은 요리·컴퓨터·운전·미용학원 등을 다니고,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들에겐 외부로부터 학습봉사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경기미용학교를 다니고 있는 박00 학생(고2)은 "8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낯설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가장 편한 우리 집이다. 선생님들 덕분에 진로에 대한 희망을 찾게 됐다"며 "2명의 동생들(초5, 초6)도 이곳에 함께 살다보니 다른 후배들도 식구처럼 잘 돌보려고 노력한다. 미용사 자격증을 획득해서 홍대 인근 미용실에 취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보육원을 언젠가 떠나야 하기에 자력양성이 최대의 관건이다. 특히 지역사회를 활용한 사회활동으로 사회적응력을 키워감과 동시에 숙소별, 전체 자치회가 있어서 원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명절연휴 또는 어린이날에 스스로 조를 편성해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도 인기가 매우 높다. 장소 선정에서부터 자금 활용까지 해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과정이다. 또한 방학에는 아이들의 자립지원을 위해 자신의 진로에 맞는 직업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역 복지관 및 사회복지시설, 건축설계사무소 등과 연계해 활동하고 그 비용에 대해서도 저축과 소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하게 하는 진로탐색 프로그램도 가동되고 있다.

보육원에는 개인과 단체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한결같은 관심과 배려로 운영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원 및 노력봉사-서울교구봉공회, 의용소방대, 일원단비경제인회, 대한환경보호감시단 ▷식사지원-행복회,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 가르시아, 쩡메이트, 어울림, 일산자유로타리클럽, 영광청년회, 왕비회, 사랑운수가 ▷청소 및 소독-굿데이크리닝, 코웨이, 크린양주 ▷이미용-헤어바이 이은, 헤어바이 미가, 둥지미용실 ▷세탁 및 노력봉사-72사단, 16보급대대 ▷학습지원 및 문화활동지원-처음처럼 ▷의류수선, 피아노, 컴퓨터, 역사-개인봉사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한국보육원 퇴소자 모임인 '한보회'는 현재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8월14일~15일, 정례적으로 보육원을 방문해 후배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중 7명 회원이 1:1 멘토가 되어 지원과 격려를 이어오고 있다.

보육원이 없는 사회 꿈꿔야

김 원장은 "최 이사장님의 '보육원이 없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말씀에 크게 공감한다"며 "우리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책임의 윤리를 잃지 않는 사회가 되길 늘 희망한다. 아이들이 정신의 자주력, 경제의 자립력, 육신의 자활력을 갖추는 인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입소부터 퇴소까지 사회에 유익주는 일원으로 커 나가길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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