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원불교는 '새불교로서 새종교'이다. 새불교란 불법연원의 새로운 가르침이요, 새종교란 변화된 근대의 지구촌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구세이념이라는 뜻이다. 연원이란 일과 사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그러면 소태산대종사가 스스로 발심하여 닦고 깨달았는데, 불교가르침을 연원으로 한다는 원리는 무엇인가? 이에는 대종사의 〈금강경〉열람과 관련이 있다.

역사는 계승과 단절로 발전한다고 이른다. 새로운 종교가 이루어질 때 기성종교의 가르침을 배격하는 가르침을 단절이라고 한다면, 그 가르침을 통합활용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경우를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라는 형태는 계승되며, 가르침도 새롭게 이루어지니 계승이 단절이고, 단절이 계승인 셈이다. 이를 연원이라는 말로 풀어보면, 대종사는 기성종교 가르침의 장·단점을 직시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정산종사가 원불교 교법을 '주로 창조하시고, 혹 혁신, 혹 인용하셨다'(〈정산종사법어〉 경의39)고 한 말씀이 이를 가리킨다.

대종사의 교법연원을 〈대종경〉은 이렇게 밝힌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신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하시다가 〈금강경〉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내가 스승의 지도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장차 회상(會上)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대종경〉서품2). 몽중(夢中)의 영감으로 모악산 불갑사에서 얻어본 〈금강경〉이 오늘날 원불교역사박물관에 전하니 문화의식이 개교 당시부터 잘 전해오는 모습이다.

그러면 〈금강경〉은 어떤 경전인가? 이의 원이름은 〈불설금강반야바라밀경(佛說金剛般若波羅蜜經)〉이다. '불설'은 대승경전, 반야바라밀은 '지혜로 저 언덕에 건너간다(智慧渡彼岸)'는 뜻이다. 반야경전 가운데 대표적이며, 흔히 이를 요약하면 〈반야심경〉과 만나게 된다고 이른다. 소승경전이 '부처님이 무어라 말씀하셨느냐?'라 묻는다면, 대승경전은 석존 멸후 5백년이 지나서 결집된 것으로 '이 상황 속에서 부처님은 무어라 말씀하실 것인가?라 할 것이다. 여기서 '불설은 곧 비불설(非佛說)이지만 상황을 살피면 진불설(眞佛說)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금강경〉은 코살라국 수도 사위성(기수급고독원)을 무대로, 1천2백5십인의 비구(수행자)들을 대동하여 베풀어진다. 이른바 바라문교의 본산으로 대화상대가 십대제자 중의 지혜제일인 사리불(舍利佛)이니, 곧 사위성 출신이다. 불법이 설해진 영산회상은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에 위치하며 처음 2백 5십 비구를 거느리므로, 이는 교리체계를 갖춘 다음에 바라문교 성역을 찾아간 형국이다. 바라문교는 사성계급(四姓階級)과 제사주의(祭祀主義)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금강경〉은 무아(無我)와 지혜를 설하고 있으니 얼마나 도전적인가?

대종사는 이 〈금강경〉의 열람을 통해서 불법의 진수를 확인한다. 불법을 천하의 큰 도라 이르면서 그 이유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 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었다」(〈대종경〉서품3)고 판석하고 있는 것이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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